부안군민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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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민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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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7.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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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장 후보지 신청 이후 부안에서 (김경일 교무 " 문화교당)
김종규 부안 군수는 산자부가 제공한 서울 번호 차량으로 위장하고 마침내 산자부에 들어가 유치 신청서 제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영웅이 된 듯 자랑스러워했으며 산자부는 축제 분위기랍니다. 서울 쪽 사람들은 17년간이나 묵은 미제(未製)국책사업을 해결한 산자부 장관 또한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한다니 기(氣)가 막힙니다.
이들과 한 하늘아래 함께 숨쉰다는 것이 구역질이 납니다.
여하튼 저는 영광도 팽겨 논 채로 부안에 들어갔습니다. 곳곳이 차량 진입이 어려워 멀찌감치 우리 집 명물 봉고세단을 세워놓고 오늘 군민대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수천여명이 모였더군요. 제 눈에는 한 2500여명(주최측 의견은 3천명)인데 일부 언론들은 1500여명이라고 보도 했습니다.
단상에는 부안 교당 부타원 김인경 교무님이 계셨습니다. 문 신부님과 내소사 진원 스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진원스님은 180cm의 훤칠한 키에 구렛나루가 잘 발달한 미남이십니다. 자기 관할구역 변산에 대한 보호본능이 강하고 장차 변산에 세계적인 명상센터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이날 군수 죽음을 애도하는 군민 결의대회에서 압권은 여성 차지였습니다. 부타원 부안교무님 개회사도 그렇고, 무엇보다 가슴 뭉클했던 것은 여성인 농민회 사무국장과 즉석에서 주민 여성들이 삭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부안은 농민회 사무국장이 여성입니다. 그 거친 사내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어제와 그제 만난 그녀는 정말로 가냘프고 이쁜 얼굴에 마음이 고운 분입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온통 선한 느낌뿐입니다. 말씨도 여성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당찼습니다. 두 아이에 엄마라고 소개한 그녀는 내 자식들에게 핵쓰레기장을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없어 투쟁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고운 머리가 잘려 나갈 때도 의연했지만 부타원님이 뒤에서 껴안자 참았던 눈물을 보였습니다. 행진 중에 제가 눈인사를 하자 수줍은 미소로 대신했습니다.
누가 이 여린 여성으로 하여금 머리를 삭발하고 눈물을 보이게 하는가. 대통령인가. 장관인가. 도지사, 군수인가. 누가 속 시원히 말 좀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청 앞까지 행진은 장엄했습니다. 맨 앞에는 풍물패가 떴는데 농민들이 부안 들판을 배경으로 두들기는 농악이 이게 진짜구나 싶습니다. 그동안 사물이니 뭐니 하면서 행사장에서만 보았던 사물하고는 느낌이 다르데요. 아마도 동학군들도 이렇게 했을 겁니다. 암튼 신명났습니다. 농악은 재능으로 하는 게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가슴으로 하는 게지요. 탈바가지를 쓴 도깨비의 춤은 나 같은 쑥 맥의 어깨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군수와 도지사의 상여(喪輿)가 뒤이어 나가고 그 뒤로 3천은 족히 넘는 행렬이 마침내 부안군청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군수와 도지사 상여가 이제 막 불타고 도망 가버린 군수를 대신해서 군정(郡政)을 주민이 직접 하겠다며 군청을 들어가려는데 겹겹이 전경들이 둘러쌌습니다. 전북도경이 전남 지원까지 받아 버스 50대, 2천명을 무장해서 군청을 삥삥 둘러쌌습니다. 마침내 힘겨루기가 시작 됐습니다. 영차 영차 밀고 당기고....이 무더운 날씨에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그래도 경찰은 꿈쩍을 안합니다. 농민들도 금새 꾀가 나서 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경을 한명씩 끌어냅니다. 옷이 찢겨지고 간간히 주먹질도 오갑니다. 사람들은 때리지 말자며 서로 외칩니다. 여기 저기 신발이 벗겨지고 안경이 깨졌습니다. 전경 1백여 명이 끌려 나왔습니다. 그래도 어느 한사람 전경을 함부로 하지 않고 보호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농민회원 하나가 전경 쪽으로 끌려가 폭행당하고 의식을 잃은 것입니다. 앰뷸런스 소리와 함께 성모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집행부는 투쟁의식을 부추겼지만 그래도 폭행은 안 된다며 군민들을 통제했습니다. 이번엔 여성들이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2차 진입시도가 시작됐습니다. 1차에 비해 금방 투쟁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작은 부상자가 생겨났습니다, 우리 교무님들도 함께 했습니다. 난 우리 교무님들은 직접 싸우는 것은 안했으면 하고 생각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도 욕지거리가 튀어 나옵니다. 앞 소나무에 올라 뒷날 시위대를 구속하기 위해 증거자료로 사직을 찍는 몰래 카메라 전경과 경찰이 미워 주변에 굴러다니는 신발을 주워 던졌습니다. 아마도 돌이 있었다면 돌도 던졌을까요? 그러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농민 하나가 트랙터를 몰고 진입을 시도합니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전경들의 얼굴에 긴장하는 빛이 역력합니다.
‘와’하는 함성에 순간 모두가 숨을 죽입니다. 트랙터 굉음소리만 요란하고......아!!!!! 다행입니다. 트랙타 운전수는 다행이도 절제력이 높은 분이었습니다.
3차 시도도 계속됐습니다. 애꿎은 전경들만 옷이 찢겨지고 개끌리듯 끌려나와 허둥댑니다. 다행인 것은 어느 누구도 이들을 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라도 욕질이라도 할라치면 금방 사람들이 에워싸 전경들을 보호합니다.
경찰도 못해먹을 노릇입니다. 어제 만난 어떤 경찰 간부는 군청에 군민이 들어가는 즉시로 자신은 직위해제 당할 거라며 곤혹스런 처지를 호소했습니다. 아마 군민들에 의해 군청이 접수당하면 전북도경국장도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죽기 살기로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집행부 간부 한사람은 이제 막갈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LPG 가스통, 트랙터, 경운기, 차량, 화염병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무기들을 준비해 내일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군민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자칫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고 수많은 부상자가 나오고 수많은 구속자가 나오고…군정은 마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전 부안을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광을 피할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을 저는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영광 피하고 나서 부안 저지 투쟁에 힘을 모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천한 생각인가요? 그래도 내 속 맘엔 그런 생각이 생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부안에도 교무님들만 30여명이 길거리 투쟁에 나섰습니다. 성지 수호를 넘어서 반핵은 우리의 기본 입장입니다. 또 부안 변산은 제법성지(製法聖地)입니다. 제법성지가 새만금으로 절단 나더니 이번엔 핵폐기장 문제로 유린되고 있습니다. 원불교 수난입니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1만불에서 2만불로 들어서는 골목에서 개발과 성장의 경제에서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경제로 옮겨가는 과정에 이런 갈등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모든 선진국도 그랬습니다.
경제가 초동단계에서는 개발과 성장이 중요하지만 일정 수준을 오르면 질(質)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질이란 자연 환경 보존과 경제발전이 함께하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일정 수준 개발과 성장을 포기해야 가능해 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개발도 하고 질도 좋은 삶을 원합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려는 과욕에서 요즘 갈등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래서 함께한 몇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길다.
우리의 이 싸움 배경에는 물질중심의 세계관이 있다.
물질중심의 세상 끝에는 창생(蒼生)의 도탄(塗炭)이 한이 없을 것이다.
나날이 뻗어가는 물질세력에 대항하여 우리의 정신세력을 확장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싸움의 정황을 정확히 알고 나면 결코 싸움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지 않는가.
우리는 맹목적으로 반핵을 하는 게 아니다. 맹목적으로 새만금을 지키려는 게 아니다.
물질문명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그 말로(末路)를 알고
싸우는 법으로 삼학팔조 사은사요를 알고
때로는 비장하게 몸을 던지고
때로는 유쾌하게 손을 맞잡고
나아가면 보이는 세계가 있다.
싸움을 즐기자.
내안의 탐욕과 싸우는 것이 즐겁고
일방적 물질문명 정책을 정당화하는 세상 세력과 싸우는 것이 즐겁다.
우리 싸움은 증오(憎惡)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비(慈悲)의 싸움이다.
물질의 폐해와 말로를 잘 모르는 저들을 달래고
모르면서도 아는 체 고집하는 저들에게 교만의 죽음과 겸손의 삶의 방식을 깨우치는 교화(敎化)의 싸움이다.
영육(靈肉)이 쌍전(雙全)하고 이사(理事)가 병행(竝行)하는 세상
정치와 도덕이 서로 구애(拘碍)되지 아니하고
수도와 생활이 서로 걸리고 막히지 않는 세상
이름 하여 광대무량(廣大無量)한 낙원이다.

죽음의 허상(虛像)을 알면
죽음을 벗어나듯이
물질문명의 허상을 알면
물질세상을 초월(超越)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영광에서 부안에서 몸을 던지는 것은
장차 한이 없을 중생의 고통을
깨우치려는 것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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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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