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농업을 WTO에서 제외시켜라.
상태바
이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농업을 WTO에서 제외시켜라.
  • .
  • 승인 2003.09.26 0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故) 이경해
나는 56세, 한국에서 온 농민이며, 젊은 시절 희망을 가지고 동료들과 농민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보자 노력하였던, 그러나 결국 실패만을 거듭한 많은 농촌지도자중 하나이다.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가 끝나고 곧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더 이상 우리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나약하게도 수백년 대대로 살아왔던 우리의 고향 농촌이 큰 파도로 붕괴되는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그 큰 파도의 근본과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제 그 결론에 도달함에 여기 제네바 WTO 정문앞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온몸으로 절규한다.
“누구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는가? 국민들인가 너희들 자신인가? 이제 허구적 논리와 외교적 수사로 가득찬 WTO농업협상은 그만하라. 농업을 WTO체제에서 제외시켜라!”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고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험한 산간토지를 개간함으로써 스스로 낙농농장을 개척한 젊은 농군이었다. 계곡 아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논에 쌀농사도 지으면서. 나의 소중한 직업- ‘농사’를 지으며 다른 동료들과 같이 단체를 만들고 이로써 우리 마을, 우리 지역사회와 국가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새벽부터 달이 뜰 때까지 열심히 일을 하였고 혁신적인 영농기술과 경영을 배우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고 이를 다시 재투자하여 농사를 키워나갔다. 더욱이 영농후계자로서 우리는 식량안보와 지역사회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역할에 자부심을 가졌다. (지금은 어떠하냐고? 내 낙농 농장은 빚으로 문을 닫았고, 논만 좀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순박하고 작은 가슴들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 가져다 줄 충격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한 순간 들끓는 두려움 속에 싸이고 말았다. 우리는 밤잠을 잘 수 없었고 WTO에 와 아더 던켈 사무총장을 만나기로 하여 결정, 여기에 온 적이 있다. 그에게 우리는 우리의 어려움을 진지하게 그러나 매우 조심스럽게 전하였다. 물론 우리의 요구는 외교적 수사와 함께 일축되었고, 우리의 작고 희미한 목소리로는 우리 앞에 선 ‘커다란 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나는 순간, 우리 동료 농민들이 한국 길거리에서 집단 농성하고 있는 환상을 보았고, 무의식적으로 칼 (아마 스위스 군용칼)이 들려진 내손이 내배를 긋고 말았다. 아무튼 이러한 나의 자극적이고 조절불능의 행동을 후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결국은 또 다시 허구에 찬 WTO 협상, 농민의 고통과 경고에 귀를 틀어막은 전과 똑같은 상황을 보고 있으니 내가 어찌해야 할까?
다시 얘기를 한국 상황으로 돌아가, 그 때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농산물시장에 현실로 나타났다. 우리는 곧 아무리 노력해도 턱없이 값싼 수입농산물 가격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알았고, 더욱이 우리의 작은 농토는(평균1.3ha) 대수출국의 1"10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수입농산물은 여기저기 범람하였고 나와 우리 친구들은 이를 피해 이 작목 저 작목으로 틈새를 찾아다녔지만, 그러나 항상 그 틈새에서 도망 나온 다른 동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UR이후 한국의 농업구조개선사업은 개별 농가들의 생산성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수입농산물이 가장 낮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공급과잉 시장에 물건을 더 갖다 얹는 격이었던 것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생산비 이하의 턱없이 낮은 가격밖에 받을 수 없었고 어떤 때는 가격하락이 갑자기 평상시의 1"4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라 이유도 모르고 여러분들의 임금이 갑자기 반으로 줄어들었다면 어떤 기분일 것인가.
일찍이 농사짓기를 포기한 농민들은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하였고 이러한 악순환을 벗어나고자 끝까지 노력했던 농민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부채로 도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중에 운이 좋은 사람들은 더 갈 수 있지만 종래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는 하룻밤 새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나버린 친구의 낡고 오래된 빈집을 돌아보고 그저 돌아오기만 바랄 뿐 어찌할 수 없었다. 한번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비관,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집에 달려간 적이 있었지만 역시 그 부인의 울부짖음 소리만 들을 뿐 어찌할 수 없었다. 당신이라면 어떤 기분이었겠는가?
나는 한 때, 우리 지역을 대표하여 전라북도 도의회 의원 일을 맡아본 적이 있다. 여기서 나는 소비자단체들과의 많은 토론을 가질 기회가 있었고, 이들로부터 소비자들은 결코 모두 다 값싼 수입농산만을 환영하지 않고 안전하고 질좋은 (사실 보기에 좋은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쌀밥 한 공기는 껌 한통값에 지나지 않고, 커피 한잔이면 토마토 1.75Kg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가공업자나 음식점 주인을 제외하고는 안전한 농산물을 (예를 들면 농약, 다이옥신, 광우병, GMO등이 없는 것)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농장으로 돌아가 자는 시간을 줄여 노력과 돈을 더 들여 안전 농산물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따로 비싼 코너를 사서 따로 큰 글씨로 표장하지 않는 한 주부들은 수입농산물과 구분하지 못하였다. 쇠고기의 경우가 제일 심하였다. 고기에다 표시를 붙일 수 없으니까. 한국인구의 1"4이나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 서울에 가보면 새로 생겨나는 것은 특히 번화가의 좁은 골목에는 음식점이고 패스트푸드체인점 뿐이다. 주부들은 사실 다른 것들 보다 편함을 추구하고 있다. 누가 우리의 식품안전을 지킬 것인가? <뒤쪽에 이어서>
<앞쪽에서> 이제 한국 농촌에 들어가 보면 많은 돈을 들여 지은 온실과 축사들은 이제 농촌에 흉물로 버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농촌마을에 들어가면 낡은 빈집과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농촌경관이란 단지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잘 짜여진 도로들이라는 것이 대단지 아파트(대개 한 단지에 천명이 거주한다), 건물, 공장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토지들은 대부분 우리 조상들이 수백 년 걸려 만든 논으로서 과거에는 먹을 양식과 물자를 대주던 것이었고, 지금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습지로서 환경기능과 수자원 기능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누가 있어 우리의 농촌, 전통 문화, 좋은 경관, 환경을 지킬 것인가?
‘종자에 대한 농민의 권리’ 와 WTO의 생물체 지적재산권 협정에 대해 다 얘기할 시간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한국이 1998년 외환위기 때 IMF의 권고로 6개의 한국 주요 종자회사를 외국에 팔은 일이다. 누가 이 유전적 유산을 지킬 것인가?
나는 농민단체의 도움으로 해외로 여행을 하였다. 다른 나라 농민들은 경쟁력을 위해 또는 최소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유럽연합 농민들은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사회적 책임이 강하여 끝까지 농토를 버리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잘 조직된 농민조직과 사회적-주로 정부의- 지원이 한 몫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적은 가족노동으로 그만한 규모에 효율적인 경영을 하였다. 그러나 지원 없이는 관광업이라면 모를까 영농을 지속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유럽도 소농들이 기본적으로 어렵기는 매 한가지처럼 보였다.
미국 농민들은 크게 보였고 때로 타산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만큼 도산위험이 크지 않겠는가. 이들은 수출이 늘어나는 것을 바라면서도 항상 도산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만한 규모에 좋은 기계를 가지고 왜 걱정하는 지 궁금했다. 그들은 내게 정부통계로 수출은 계속 늘어난다는데 국제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자기들 손에 돌아오는 것은 고작 자기고용 노동자 임금뿐 이라는 것을 실토하였다. 반면, 자기들의 비즈니스 파트너 (곡물업자, 농자재기업, 가공기업)의 배만 계속 크게 크게 불리고 있다고 불만하였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추가보조금 없이는 (경쟁력을 위해 계속 투자한) 융자금의 이자도 갚기 어려워 파산에 직면해있다는 말을 들었다.
호주도 이런 나의 질문에 답하고 싶고, 또 미국 서부개척시대 영화가 연상되어 호기심이 있었지만 여행경비가 허락치 않았다. 가까이 있는 일본은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마다 기후나 영농구조 그리고 농민의 어려움 측면에서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매우 잘 짜여진 농정시스템 (내가 보기는 좀 복잡하지만)과 이를 위해 섬세한 공무원들의 작업이었다. 경쟁하는 것,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하란 말인가?
수많은 다른 개도국들 사정도 비슷하리라. 물론 그 겉으로 나타나는 국내적 문제들은 조금씩 다르리라. 그러나 공통적으로 국제적으로 덤핑된 농산물의 수입급증, 턱없이 모자란 국가예산, 그에 반해 너무나 많은 농촌인구 등이 근본 요인이 아니겠는가. 그들에게는 지금 상황에서 관세에 의한 보호가 가장 현실적이 아니겠는가. 나는 국제곡물가격이 그렇게 싸다하는 데도 많은 최빈국들에서 굶주림이 만연하고 있는 것을 뉴스로 보면서 안타깝다고 표현해야 할지.
내 생각으로는 무역으로 돈을 벌어 식량안보를 구하는 것이 그들 방식이 아니라, 토지와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방식이라고 본다. 이러한 인간의 재해를 TV에서 볼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서구의 어느 도시에서 본 배가 부르고 뚱뚱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자비(慈悲)가 있어야 한다고? 아니다. 그들이 다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한 때 또, 한국에서 작은 농어민신문사를 세우고 이를 맡아 운영하였다. 이 때 많은 사회단체나 정부사람들과도 토론하였고, WTO에서 그리고 협상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런 중, 특히나 시애틀 각료회의에서의 이면 이야기, 도하에서의 ‘개도국 팔비틀기’식의 얘기들을 듣고서 나는 다시 우리 한국 농민들에게 다시 먹구름이 다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그리고 오늘 무책임하게도 아이들 숫자놀음 하듯 던진 하빈슨 텍스트의 숫자들을 보면서 UR때처럼 수출 강대국들이 장난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지금, 인류는 지금 극소수 강대국과 그 대리인인 세계무역기구(WTO)와 이를 돕는 국제기금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상업적 로비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반인류적이고 농민말살적인, 반환경적이고, 비민주적인 세계화의 위험에 빠져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즉시 이를 중단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 허구적인 신자유주위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농업을 말살시킬 것이며, 이로써 모든 인류에게 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음을.
나는 단호히 말하건대, 우루과이라운드는 몇몇 야망에 찬 정치집단들이 다국적 기업과 외눈박이 학자연하는 자들과 동조하여 자기들의 골치아픈 농업문제를 다른 나라에 떠넘긴 한 판 사기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농업을 WTO에서 제외시켜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