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뒤바꾼 원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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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뒤바꾼 원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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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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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학생 " 원경고등학교 3학년
아버지의 병환
우리 집은 초등학교 2학년 초반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2학년 후반이 될 때쯤 아버지가 일을 하시다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입원을 하시고 검사를 받던 중, 간염이라는 병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는 퇴원을 하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도록 일을 하러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궁금해서 아버지께 물어 봤습니다. "많이 아파요, 어디가 어떻게 아파요?" 아버지는 그냥 환히 웃기만 했습니다. 전 어머니께도 물어 봤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곧 괜찮아 질 거야, 신경 쓰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아버지 병은 더욱 악화되어 만성으로 넘어가 병원에서 사망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 집안엔 차츰 웃음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병을 나으시려고 치료에 좋다는 건 다 해보았습니다. 저도 매일 같이 아버지가 녹즙을 드시거나 약초를 가지고 오면 다듬고 씻고 즙을 만들어서 아버지께 드리고, 녹즙기를 씻고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습니다. 아버진 조금만 움직이시거나 신경을 쓰시면 몸에서 바로 알아차려 더욱 아프셨습니다.
아버지가 투병 생활로 돈을 벌지 못하시니깐 어머니가 대신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그 번 돈은 아버지 치료하는데 다 씌어졌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조금 더 벌어 보시겠다고 집에서 먼 곳으로 일을 다녔습니다. 아버지 투병 생활로 저희 집은 가난한 집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유명 브랜드만 사용했고 항상 좋은 것만 가졌는데 집 형편이 어려워지자 제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좋은걸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정말 그때는 무척 괴로웠습니다.

가출
저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해서 중학교 때 육상선수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운동을 좋아해서 육상선수를 했지만 집에 가면 아버지 수발을 들고 집안 청소를 해야 했고, 이리 저리 해야 할 일이 싫어서 육상을 핑계 삼아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육상을 핑계 대고 친구들과 당구장, 노래방, PC방을 돌아다니며 놀았고, 놀다가 늦게 집에 가면 아버지가 불편한 몸으로 제가 할일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땐 어려서 내가 안하면 당장에 내 몸이 편하니깐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진 병과 싸우면서 제가 할 일까지 하셨는데도 그냥 환히 웃으시면서 "늦게까지 운동해서 피곤하겠다, 방에 가서 쉬어라"하고 말씀 하시고, 제가 방에서 쉬다가 잠이 들면 아버진 조용히 제 다리를 주물러 주시곤 했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와 집이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쉽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한 저는 고등학교도 멀리서 다녀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원서를 집과 무려 4시간이나 되는 학교에 내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가서도 제 생활은 중학교 때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점점 불량 학생이 되어갔고 집이 가난해서 돈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돈에 집착하게 되자 전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 둘과 돈을 벌기로 계획을 잡고 가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린 우선 잘 아는 형을 통해 나이트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린 나이트에서 일을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으면 분명 남는 시간에 돈을 쓸 게 분명해서 다른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유와 같이 신문을 돌리고 전단지 배포, 식당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까지 했습니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은 겨우 2시간 정도지만 돈이 모이는 재미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50일 가량 3명이서 무려 천만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세 명의 이름으로 학교 앞 PC방과 분식집을 차리자고 한 약속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우리가 가출해서 집에 연락을 안 해주자 집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우리를 잡으려고 사람을 동원해 2주 가량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마지막으로 단념하고 가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중, 저랑 같이 나간 친구 한 명을 발견하여 뒤를 밟아 집을 알아두시고, 부모님과 친구들이 집에 들이닥쳐 우리는 붙잡혔습니다. 집에 왔을 때 정말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세 명은 잠시 일어나 따뜻한 밥을 먹고 다시 잠을 잤는데, 오랜만에 잠다운 잠을 푹 잤습니다.

어머니의 눈물
이제 어머니는 어떻게든 저를 학교에 다시 보내려고 사방팔방 다 돌아다니면서 좀 더 적응 잘 할 수 있는 학교로 보내기 위해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 친구 분이 집에 와서는 우리 딸이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거긴 일반학교랑 달라서 한번 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저녁 어머니가 저한테 대안학교에 대해 말을 해주셨고 저는 그 동안 어머니가 저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시는 모습과 제가 부모님께 잘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 어머니 뜻대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전 "어머니 알아서 해 주세요."라고 이 말을 하자, 어머니는 "알았다"고 하시며 주방에 가셨습니다. 저는 좀 기분이 상해 주방에 가서, ‘나 학교 안가.’라고 말을 하려고 주방문을 열었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주방에 들어갔으면 분명 일을 하시고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벽에 기대어 울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저도 눈물이 주루룩 흘려 내렸습니다. 전 주방문을 닫아 버리고 어머니가 지금 왜 울고 계실까 생각을 한참 동안 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어머니는 제 마음이 변하기전에 빨리 보내시려고 서둘러 알아 보셨죠. 전 대안학교도 일반학교라고 생각해서 또 지긋지긋한 교복과 기계 같이 공부만 하는 지옥 속으로 가는 생각을 하며 매일 한숨을 쉬었습니다.
면접을 보러 처음 들어선 학교는 제 생각을 확 깨트려 버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 교복 입은 학생들이 아니라 간편한 복장인 사복을 전교생이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내에서 술과 담배를 허용하고 있어 이게 정말 학교인지 의문이 갈 정도였습니다. 면접을 보고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나서 학교와 기숙사를 두루 살펴 본 후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지옥 같은 학교만 있는 게 아니구나. 그렇다면 학교를 다시 다닐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왕 학교를 가기로 마음먹었으면 빨리 가서 친구들과 친해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먼저 어머니한테 빨리 학교 가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럼 당장 준비해서 내일이라도 가라고 하셨습니다. 전 그때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럼 저 내일 갈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도 좋으신지 제가 준비하는 걸 도와주셨습니다. …
전 이래저래 학교가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특히 선생님과 학생들이 친부모님 친형 친누나 친동생 같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또 마음공부를 배웠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음공부를 배우면서 경계를 알았고, 경계를 알면서 멈추는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경계란 내 마음을 움직이는 모든 대상을 말합니다.
마음공부 시간엔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일어나는 모든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또 일기를 쓰고 담임선생님께서 감정을 해주시는데, 힘든 일을 적으면 힘내라는 격려와 선생님도 한때는 그런 적이 있었다는 선생님의 과거 이야기로 힘을 주시고, 즐거운 일을 적을 때는 선생님께선 자신의 일인 양 더욱 기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깐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줄었습니다.

봉사활동을 찾아
저는 원경에서 받은 게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나도 줘야겠는데 무엇을 줘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원경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원경고의 제 6대 학생회장을 뽑을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전 학생회장이란 말에 귀가 쫑긋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 앞에 서서 리드한 적이 없고,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를 하지도 않았고, 생각조차 못 할 일이었습니다.
전 결심을 했습니다. 회장선거에 나가 내가 받은 모든 걸 조금이나마 돌려주겠다고. 저는 발에 불이 나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회장 선거 당일, 회장 후보는 저까지 포함해서 두 명! 두 명이라고 방심하면 안 된다! 저는 “선후배간 가족 같은 분위기 조성. 내 집처럼 편안한 학교”를 공약 사항으로 내세웠습니다. 상대방은 “학생을 위한,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공약 사항을 내세웠고. 접전 끝에 제가 원경고 제 6대 학생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기분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 번 원경은 저에게 은혜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전 회장이 되어서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솔선수범해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하고, 제일 먼저 나서 일을 했습니다. 학생회장을 하면서 힘들지만 제가 원경을 위해, 그리고 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앞으로 앞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원경고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제 머리를 채워서 그런지, 전 그 누구보다도 원경고에 남다른 애착과 자부심이 컸습니다.
마음공부를 통해 제 마음을 잘 바라 볼 줄 알게 되어서, 무슨 일이든 감정적으로 하기보다 이성적 판단을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말 할 수 없이 많은 면들을 원경고에 와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원경고등학교와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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