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탈북한 "평화의집" 사무국장 이원각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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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탈북한 "평화의집" 사무국장 이원각 교도
  • 서원정
  • 승인 2004.05.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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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교화는 통일시대 교화 초석"
“저와 같은 처지의 탈북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원각" 교도는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던 1994년도에 북한을 극적으로 탈출해 귀순했다.
외롭고 슬플때는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 스트레스를 풀고, 스스로를 위로해 준다는 이 교도.
94년 탈북한 그는 97년에 백수가 되었다. 정확히는 가수였지만, 소위 잘 나가는 가수는 아니었기에 생계를 위해서는 섬유공장, 유리공장, 마을버스 운전, 막노동 등 외국인 노동자들도 기피하는 3D업종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처음 귀순했을 때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 1400만원은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 800만원과 몇 가지 필수품을 사고나니 통장잔고 겨우 300만원.
정부가 동아건설에 취업을 알선해 줬지만, 이 교도는 당시 동아건설이 대기업인지도 몰랐고, 남한에서는 대기업 취직 자리를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전혀 감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어려서부터 노래가 하고 싶었던 그는 담당경찰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순진하게 사표를 내고 연예계로 진출했고, 보증금을 되돌려 받으려고 영구임대아파트도 반납해 버렸다. 이후 자본주의 사회의 쓴 맛을 톡톡히 본 그는 지금은 무일푼의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현재까지 탈북자는 4500명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어하고, 생계문제에 있어서도 철부지 어린애들이나 다름없다.
이 교도는 탈북자들의 자활을 목적으로 하는 ‘평화의 집"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탈북자들의 남한사회 적응과 취업을 지원할 생각이다.
평화의 집은 취업 및 진로상담, 직업교육, 풍물교실, 노래교실, 인터넷교실(PC방), 영상교실(비디오방), 북카페(독서)를 운영하고, 탈북자 평화예술단을 결성해 교도소 등 사회복지시설로 공연도 다닐 계획이다.
귀순하고 3년 후, 동료 이은평 씨의 손에 이끌려 처음 찾은 전농교당에서 이은숙 교무는 이 교도를 피붙이를 대하듯 살갑게 맞아주었고, 김치도 담아 주는 등 천애 고아나 다름없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북한에선 전혀 종교란 걸 접하지 못했는데, 남한에 와서는 모든 종교를 섭렵해 보았다”는 그는 특히 “원불교는 청빈하고 진실한 점이 마음에 와 닿는다"며 “탈북 귀순자들을 원불교로 교화시키는 것은 앞으로 곧 닥칠 남북통일시대에 대비해 초석을 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남한에 와 있는 귀순자들을 교화시키면, 통일이 실현된 후 종교에 전혀 생소한 북한 주민들에게 원불교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으리란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아니 교구차원의 탈북자 교화가 어쩌면 좀 늦은 감조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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