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신 교무가 들려주는 산속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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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신 교무가 들려주는 산속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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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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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연일 비가 내립니다. 여름 손님으로 오는 장마이겠지요.
얼마 전 지나간 태풍 민들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온 몸으로 휘휘 춤추게 하고 계곡물도 하얀 포말을 일으키도록 불려 놓았습니다. 나무들의 흔들림을 바라보다가 급하게 우산을 펴들고 바람을 가르며 텃밭에 가보았습니다. 매일 몇 차례씩 둘러보는 텃밭이지만 오늘처럼 급한 마음이 나기는 처음입니다.
느티나무가 흔들릴 때 ‘텃밭은 무사할까?’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역시 온전하지가 않았습니다. 한길이 넘도록 쑥쑥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한 옥수수가 꺾어지고 넘어지고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옥수수 먹을 때 오라고 초대한 분이 많은데 그 꿈이 조금은 깨질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텃밭 가꾸기 주 담당인 덕무님도 옥수수가 넘어졌다고 아픈 마음을 전합니다. 넓은 텃밭을 만들어 놓고 제일 먼저 심은 것이 옥수수입니다. 심어야 할 것이 많은데 옥수수를 너무 많이 심었다고 구박을 했더니 덕무님은 그 넓은 밭을 누가 다 가꾸며 사람들이 많이 오는 여름에 먹을 수 있고 크게 손길이 가지 않아 좋다고 했습니다. 그렇겠다고 인정하고 지나온 일인데 넘어진 옥수수를 보며 나보다 더 마음이 아플 덕무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우리 집 텃밭은 20여년 묵혀둔 땅입니다. 훈련원 본관을 지어야 할 자리인데 아직 일이 시작되지 않았고 많은 세월 동안 뿌리를 뻗어 쑥대밭이었습니다.
텃밭아래 주차장 물길을 돌려내고 땅을 고르느라 포크레인으로 일을 하며 풀을 긁어내고 골을 내어 텃밭을 만들었는데. 와! 넓었습니다. 셋이서 집안관리하며 살림하며 텃밭을 가꾸기에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여름 장마동안 비싸게 사먹었던 채소 값을 생각하면 땀 흘리는 노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틈만 나면 밭으로 나가 풀을 걷어내고 퇴비를 넣은 후 씨 뿌리고 모종하기에 바빴습니다.
옥수수, 상추, 쑥갓, 고소, 들깨, 고추, 오이, 호박, 가지, 콩, 부추… 그 동안 함께 호흡하며 사랑을 나누었지요. 고추가 열리고 오이와 호박이 열리고, 남의 밭을 볼 때는 무심히 바라보았는데 텃밭을 가꾸면서는 새삼 천지자연의 이치가 신비롭기만 합니다.
훈련이나 휴가를 오시는 분들의 식탁에 채소를 올려놓고 “우리 집 텃밭에서 가꾸었습니다. 무공해예요.”하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수고로움도 기쁨으로 돌아옵니다. ‘나눔’이란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고 정성은 감동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농사를 짓는데도 계절을 알아야 하고 때 맞춰 심고 가꾸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지 않을까요? 천지의 일기가 비 오고 바람불고 흐리고 맑은 날이 있는 것처럼 삶의 여정에는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때로 힘겨운 경계가 찾아와 좌절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식물도 땡볕과 비바람과 폭우를 이겨야 알찬 수확을 할 수 있듯이 삶도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가나봅니다.
또 어떤 태풍이 찾아올까요?
텃밭의 채소들이 무사하도록 준비해야겠습니다.
<오덕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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