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설교문화의 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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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설교문화의 오늘과 내일
  • 민소연
  • 승인 2005.05.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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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사상연구원 특별 좌담
사회(박상권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 설교와 교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화에 있어서 설교는 과연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가지는가?
홍성문(서울교구 청운회장) : 우리가 이 좋은 법을 세계적으로 펼쳐가기 위해 할 일이 많다. 특히 역사가 짧은 만큼 기존의 타 종교 설교를 벤치마킹하는 등의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신입교도뿐 아니라 기존교도들에게도 설교는 교화의 기본이고 핵심이다.
이종진(중앙교구장) : 60년대 이후 우리 교단이 많은 발전을 가져온 것 같으나 그것은 양적인 발전이지 질적인 발전은 아니다. 질적인 발전 저하의 가장 큰 요인은 설교 부분의 미비라고 생각한다. 요즘 교무들의 설교는 젊은 세대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 설교 잘하는 교무들이 현장교화에 앞장서지 않고 총부 등의 사무부서 쪽으로 가는 것도 안타깝다. 교단 전체적으로 교화직이 인기가 없는 부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사회 : 설교는 교화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설교를 통해 교무와 교도가 만나 법을 나누는 부분에 대해 말해달라.
나상호(교화훈련부) : 교무가 교도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 법회이기도 하지만 교무와 교도와의 대면관계에 따라 설교의 비중이 달라진다고 본다.
송흥인(봉동교당 교무) : 도시를 거쳐 지금은 시골에서 교무생활을 하고 있는데 확실히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있다. 도시에서는 설교의 비중이 큰 반면에 농촌에서는 교도와의 접촉이 여러 방면으로 이루어져 도시에 비해 설교의 비중이 다소 작을 수 있다.
홍성문 : 도시에서는 지난 한 주의 생활을 일요일에 점검하고 대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교도들이 생활속에서 갈구하는 부분을 터뜨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바쁜 현대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설교의 진정한 의의다.
사회 : 설교의 주제에 대해 종법사님은 교법의 비중을 높여야한다고 주장하셨다. 어떤 주제가 매력적이고 교화에 효과적인가?
홍성문 : 설교는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던지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절대성은 설교의 80% 정도를 차지하는게 바람직하다. 동시에 효율성 제고의 문제에 있어서 설교대상의 특수성을 배려해야 한다. 대상에 대해 미리 연구하여 주로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까지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종진 : 교도들이 원하는 설교에 대해 물어봤더니 초등학생도 이해하도록 쉽게 해달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또, 큰 주제를 잡는 것보다는 부분이라도 심도있게 다뤄주고, 신앙에 바탕한 감성적인 설교를 원하는 교도들도 많았다. 설교의 말미에 의문을 남겨 스스로 사리연구하게 해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사회 : 오랫동안 교화의 현장에 있어오신 중진으로서 보는 설교 변화는?
송흥인 :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설교시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30분을 넘으면 교도들이 지루해 한다. 또한, 교도들의 수준이 높아져 일반 교양 강좌같은 설교보다는 정전이나 대종경에 대한 심도있는 시간을 원한다. 준비가 잘 되지 않은 설교는 이내 티가 난다. 같은 제목의 설교를 매년 하더라도 교도들의 특성에 따라 그때그때 준비를 해야한다. 설교는 교무 입장에서도 일주일동안의 생활에 대한 점검, 대조의 시간이다.
이종진 : 기존교도들의 반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교화의 양적,질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신입 교도들의 반응을 잘 살피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한다.
사회 :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인가?
나상호 : 그 문제는 설교의 정체성의 문제와 맞물려있다. 설교를 마친 후 교도들의 시선이 교무가 아닌 교도 자신에게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일상에서 끌어낸 법문을 통해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도록 안내하고 유도하는 역할을 설교가 해야한다. ‘감성’은 느낌이 아니라 교도의 일상 생활에서 쉽게 연마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활에도 법문이 살아 숨쉬고 있구나’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좋은 설교의 조건이다.
이종진 : 좋은 설교는 교리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한다. 그 밖에도 독서, 인생 자체에 대한 깊은 고찰 등이 필요하다.
송흥인 : 봉동교당으로 와서 설교로 정전을 하겠다고 했더니 교도들이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교리와 교법활용이 별개가 아니며, 곧 대종사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예화들을 준비했다. 지금은 교도들이 정전이 매우 쉽다고 말씀하신다. 그후로 설교 때마다 각자의 예화와 연마할 의두를 서로 나누면서 정전을 공부해가고 있다.
사회 : 좋은 설교는 독서량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 있다. 독서량이나 예화 등과 관련하여 설교 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이종진 : 예화없는 설교는 창문 없는 건물과 같다고 본다. 예화는 교법을 부드럽고 윤택하게 하고 잘 전달하도록 한다. 설교에 있어서 예화의 비중은 절대적이며, 적절한 예화를 찾기 위해 다독은 꼭 필요하다.
홍성문 : 예화는 인간사에 대한 얘기이므로 그 자체도 진리다. 또한 교도는 자신의 문제를, 교무는 그 문제들에 대한 해답과 화두들을 가지고 설교에 임한다. 준비의 정도에 따라 시너지 효과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나상호 : 설교의 준비에 있어서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또한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매번 다른 스타일을 선택할 필요도 있다. 현장 교화에 있어 어떠한 상황을 만날지 모르니 직,간접 경험을 충분히 쌓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 : 설교가 교도에게 주는 영향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해달라.
홍성문 : 특히 신입교도의 경우 교무의 설교가 가지는 비중이 클 수 밖에 없다. 기존 교도들보다는 신입교도들을 위한 복합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식물에도 생장점이 있듯이 교화의 생장점이 되어 다른 생장점을 밀어올리는 신입교도들에게 실로 설교의 역할은 막대하다.
교단차원의 긴밀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우리는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는데, 신앙적인 부분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회 : 설교의 외형적인 조건들에 대해 말한다면?
송흥인 : 설교때마다 전문을 다 준비해가지만 녹음해서 들어보면 생각지 않았던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교무들끼리의 의견교환과 교무 스스로의 유념이 필요하다고 본다.
홍성문 : 교무마다 설교에 대한 정체성, 개성 등이 다르다. 하나의 일정한 틀에 맞추지 말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도 필요하다.
이종진 : 이제는 귀로만 듣는 설교의 시대는 지났다. 동적이며 열정적인 설교가 필요하다. 타 종교에 비해 교서에 대한 연구와 그 외의 준비도 부족하다는 느낌도 든다. 특히, 현장교화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홍성문 : 한 교당에서 멀티미디어 시스템과 자료가 법회에 쓰이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멀티미디어를 적용한 법회는 복합적 접근이 가능해 홍보효과가 뛰어나며, 쉽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원불교 문화 형성에 이바지 할 수 있다.
이종진 : 기존의 법회는 사회자의 일방적인 진행이 전체적인 흐름을 끊는 점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다. 또한 신입교도들에게는 고리타분한 느낌도 줄 수 있다. 법회에서의 미디어의 활용은 더 이상 늦춰지면 안된다.
사회 : 마지막으로 미래지향적인 바람직한 설교에 대해 정리를 한다면?
나상호 : 기본에 충실한 설교가 가장 중요하다. 전통성은 유지하되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야 하고 새로운 세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홍성문 :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설교보다는 자문하고 반성하게 되는 설교가 진실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또한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에 있어, 특수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공유와 조화를 이루며 시대정신과 함께 가야한다.
이종진 : 얼마전 교화연구소에서 교도의 80%정도가 설교에 만족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나머지 20%정도의 교도들이다. 소수의 교도라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분명히 제고할 필요가 있다.
송흥인 : 교무에게도 설교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대종사의 은혜로운 법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교무 스스로의 끊임없는 연구가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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