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협력운동의 과제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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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협력운동의 과제와 전망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5.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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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이흠 교수,한국종교사회연구소장



종교협력운동은 기본적으로 종교인 또는 종교단체가 대사회적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특정 종교내의 협력운동’, ‘다종교사회 협력운동’의 두 형태가 있다. 이 두 형태가 서로 손을 잡고 종교협력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요구되는 것은 상호이해이다.


그러나 특정 종교내의 협력 운동이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인들에 의하여 추진되는 경우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안에서 종교전통들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분열되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내의 협동운동은 그 무엇보다 그 운동의 주체 자와 대상 사이의 상호이해가 있을 때만 서로 협동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은‘다종교사회협동운동’에 있어서도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다종교사회 협력운동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하여 다종교상황을 알아야 한다.


종교는 절대 신념체계이다. 그러므로 다종교상황은 곧 절대 신념체계가 여럿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절대는 하나만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다종교상황에는 절대 신념체계가 여럿이 공존하기 때문에, ‘절대’가 상대화 된다. 바로 이 점을 모든 종교가 수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자신이 상대화되는 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종교전통이나 종교인으로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처럼 어려운 일을 과연 종교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것이 극복되지 않고는 그 어떤 형태의 종교협력운동도 성공할 수가 있겠는가?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접어놓고 종교협력운동을 전개한다면, 이는 마음 안에 문제를 안고 겉으로만 안 그런 척하는 이른바 외형적 협력 운동이 되는 것이다.


종교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인정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종교개혁은 현대 다종교상황을 수용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고전종교의 개혁은 기원전 2세기의 용수가 소승불교를 대승불교로, 송대의 신 유학자들이 성리학을, 그리고 마틴 루터가 개신교 기독교를 일으켜 사실, 이들이 진정한 종교개혁운동이었다. 이처럼 진정한 종교개혁운동은 각각 전통사상의 맥락에서 과감하게 당시의 시대적 요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에 비교한다면 다종교 협력운동은 개별 종교인들의 자기전통은 지키고 있지만 시대적 요청을 정비하여 현대적 요청을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안 되었다는 데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결과적으로 다종교협력운동은 단체만 많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 그들을 통합할 수 있는 공통의 철학이 분명하지 않다.


현대사회가 요청하는 해답은 오직 다종교상황에서 절대 신념체계를 지키면서 타종교의 절대 신념체계를 인정 할 수 있는 철학만이 현대사회에 설득력을 갖게 된다. 예컨대 1960년대 이후에 일어난 한국의 다종교운동사를 되돌아보면 우리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문제들 가운데서 그 해답으로 ‘종교협력운동의 철학’을 들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종교는 절대 신념체계이며, 절대 신념체계는 사실상 형이상학적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종교상황은 결국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상대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이든, 동양이든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다종교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문제를 한 층 더 혼돈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이상학적 세계관에서도 벗어난 틀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바로 경험적 차원의 해답이며 그 해답은 대화의 원리에 있다. 대화는 주체성 곧 나의 절대 신념체계를 지킴으로서 나의 삶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포용성 곧 타자의 절대 신념체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반성에서만 가능하다.


반성은 곧 인간 지성의 표현이다. 현대 지성인은 나와 타인인 사이에서 한 발 물러나 양자를 모두 관찰하는 객관성을 훈련 받았다. 그러한 객관적인 안목이 나와 같이 타자도‘절대 신념체계’를 갖고 그에 대한 ‘절대 확신’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에서 나와 같은 모습을 보게’되는 것이다.


종교적 신행의 외적 태도에서 서로 같지만 내면적 확신의 내용은 서로 다르다는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신념의 내용은 다를지라도 종교인이 살아가는 태도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자아와 타자에게서 동시에 볼 수 있게 된다. 이때 비로소 양자가 진정한 또는 전인적 이해가 가능해 진다.


이러한 전인적인 이해가 곧 ‘현대의 고전종교’의 종교인들 사이에 전인적 대화를 열어주고 이에 이르렀을 때, 성공적이고 완전한 공동협력이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끌어 가려면 다원주의의 원리를 수용해야 한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원리를 공유할 때 진정한 협력을 할 수 있게 된다.


다원주의 원리는 곧 서로 하나가 되어 사회에 봉사하고 사회개혁을 하는 원리가 되는 것이다. 다원주의 철학을 공유하는 데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기복신행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과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기 위하여 먼저 우리 종교의 개혁을 크게 전개해야 한다는 점’을 종교계와 사회에 설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종교협력운동은 한편으로, 전통적인 측면에서는 종교인들이 그들의 절대 신념체계를 지키는 ‘내면적 정체성’을 견지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개혁적인 측면에서는 타 종교인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는 ‘외면적인 수용성’을 지키게 할 때 건강한 운동을 전개하여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내면적 정체성과 외면적 수용성이 한데 어울리는 이른바 ‘어울림의 멋’이 바로 한국인의 종교전통에 언제나 나타나며 그것이 바로 한국인의 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현대다종교사회가 지향하는 다원주의의 ‘멋’이다. 그것은 현대의 인간사회를 평화로 이끌어가는 길이며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다원주의 철학’을 갖고 다양한 종교 협력단체들이 서로 손을 잡았을 때, 비로소 앞으로의 종교협력 단체들이 과거와는 달리, 보수적인 종교단체와 반종교성향의 현대사회를 분명하게 설득하여 새로운 현대 종교문화를 창조하는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정리 김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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