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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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에게 길을 묻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5.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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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공현 교무의 고민하는 힘 / 대각개교절 기념특집



종교학에는 기본적인 격언이 하나있다. ‘He who knows one, knows none.’ 즉, 종교를 하나만 알면 종교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종교학은 종교의 여러 가지 요소들-사회적 실천, 의례, 수도주의, 영성, 신화, 윤리 등 포괄적인 종교 현상들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주로 교리의 문제, 영적 문제에 집중하는 교학 연구와는 차이가 있다. 원불교 결복기 100년대를 앞두고 필자는 동경대학 박사학위 수여식 참석차 일본에 건너가 동대학 종교학과 교수이자 제19회 IARF(세계종교학회)위원장을 맡았던 시마조노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 일부 내용을 게재한다.






동경대학 문학부 종교학·종교사학과를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동경대학 종교학과의 특징과 교수님들의 특별한 지도방침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경대학의 문학부에는 인도철학불교학과가 있으며, 이슬람학과, 중국사상문화학과가 있습니다. 특히 인도철학불교학과가 있다는 것을 주목해보면 특정의 종교를 신앙하는 입장에서 종교를 연구하려는 사람들의 진학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학과는 특정종교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상대화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교의 다양성을 언제나 의식하며 그 종교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특정종교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추구하는 반면 여러 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비판적인 시각을 동시에 가진다는 특징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동경대학 종교학과를 진학하는 학생들 중에는 종교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를 상대화시킬 줄 아는 면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도록 지도합니다. 한편으로는 종교 신앙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 자기의 삶, 더 넓게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 관심으로 입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은 문학적 예술적 성향이 높은데, 이들에게는 종교의 근원적인 힘에 접목해 들어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매년 일본의 종교학회를 참석해 보면 세계 종교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아시아적 요소라고 할까, 일본 종교학회로써의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주제를 이끌어 간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방향에 대한 리더들의 고민은 어떻게 설정이 되는지요?




종교학회는 서양에서 시작되어 서양전통을 총체화시켜 인류의 제 종교를 규명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종교를 배운다는 것은 이러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스스로가 당면과제로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19차 세계종교학회가 2005년에 동경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때 우리는 ‘비 서양지역에서 종교를 좀 더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학설이 서양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대 동양종교, 그리스도교 대 이슬람 등의 연구가 주류를 이뤘다면 이제는 동아시아 대 이슬람교랄까 샤머니즘 대 아프리카 종교 등의 비교 대상이 다각적 측면에서 이뤄질 수 있는 장이 열렸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다각적 측면에서 노력했다는 점은 향후 세계종교학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동경대학은 10여년 전부터 생명윤리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종교학과 이외에도 의학, 철학, 윤리학등 다양한 학과들과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학풍을 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학문 영역들이 서로 벽을 낮추고 연대하고자 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데 교수님의 진단은 어떠신지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훨씬 복잡하면서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문화는 이동하기 쉬워지면서 타문화의 영향을 받기도 쉬워졌습니다. 일본에 있어도 유럽이나 한국의 문화영향을 점점 강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엘리트 문화를 표현했다면 지금은 보통사람들 문화에 의해 세계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어느 곳에 있어도 복잡해진 문화와 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죽음’을 중심으로 한 문화만 봐도 생명윤리를 통해 철저한 규명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의례가 점점 다양하게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국만 해도 납골당이니 수장이니 새로운 모습들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가치판단에 대한 대응이 점점 곤란을 겪고 있으리라 추측됩니다.


종교 간의 가치관도 이렇듯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안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학문은 어떻게 대응하며, 어떻게 조화시키고 화해시킬 것인가라는 당면과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기존의 학문이 고전을 깊게 연구하며 개인적으로 훌륭한 지혜를 단련하는데 목표를 두었다면, 최근의 학문은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함께 협력하며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속에서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접하며 생각되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역할을 볼 때, 고대에는 여성의 영적부분을 남성들이 조직적으로 보필해 주는 형상이 컸다고 봅니다. 하지만 점점 여성들이 담당했던 영성적 면은 약해지고 남성들이 담당했던 조직력은 권력이 되어 정치적 영역에서 세력이 커져왔다고 보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사회변동은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부각시키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것은 고대와는 확연한 차이를 두고 움직이는 모습이라는 판단이 되는데 교수님은 이러한 움직임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요?




여성이 권력으로부터 배제되고 남성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사회조직이 2000년 이상 이 세계를 움직여 왔습니다. 물론 종교 안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반영되어졌고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상위에 군림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흐름에 현대인들은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좋은 삶의 방법은 결코 권력적인 것과는 무관하다는 인식이 싹텄다고 봅니다. 이러한 변화는 근대문명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지배하거나 종교와 미, 도덕과 미 등이 대립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일 거라는 인식들의 깨어남입니다. 과연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판단이 바른 가치관일까에 대한 의문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여성성은 케어를 한다거나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마음을 쓰는 노력들로 나타나며, 인간은 다만 인간으로써 서로가 존중하며 포용해야 한다는 삶의 모습을 띠며, 집단이 힘을 모아 일을 할 때 자신감을 일으키거나 명령, 지도적 성향인 남성성과는 다른 리더십입니다. 서양종교나 이슬람 문화보다는 아시아 종교가 이러한 여성성을 중시해 왔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동향을 우리시대에 어떻게 살려나가야 하는가는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직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권위적인 성향보다 봉사 등 사회약자의 옆에 다가서는 종교본연의 자세가 오히려 오늘의 시대적 사명이며 여성성의 발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세계 정치 동향을 봐도 이제는 대국들의 움직임이 좀처럼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작은 나라들이 시대를 정확히 읽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큰 조직에 합류하며 안정을 추구해봤지만 그에 따른 충족되지 못하는 많은 경험들이 오히려 조직 밖에서 가능하다는 경험들로 새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원불교가 100년대를 앞두고 세계종교를 지향하려면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모습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생명력 있는 작은 규모의 로컬한 면을 더욱 발산시킬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의 세계종교는 권력과 유착함으로써 거대해졌습니다. 제국주의를 보필하는 역할로 종교들이 세계적으로 성장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은 남성중심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원불교가 이런 전철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특정문화를 간단히 교화한다보다 로컬한 영역을 중시하면서 그 필요성을 인정받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 교세확장에는 타 지역문화를 정복한 피의 역사들이 많습니다. 본토 아메리카 인디언문화를 전멸시키고 그 위에 기독교가 대역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정복이 교세확장을 위해서 당연하다고 인식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이러한 종교성장을 부정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계종교는 적어도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각자의 문화가 독자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세계종교는 다원성을 인정하면서도 각자의 종교 본연의 역할을 담당하는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되어져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시대에 따라 많은 신종교들이 발생했지만 바람직하게 성장하는 종교가 있는가하면 기대치에 점점 벗어나는 종교들도 많습니다. 종교학자로서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일본종교사의 특징도 한국과 같이 종교가 다원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불교전래를 보면 일본에서만도 아주 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는 구심력이 없어서 통합하는 면이 불가능했다는 점과, 작은 단위로 분리됨으로써 민중들의 생활 속에 뿌리 깊게 파고 들 수 있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특히, 후자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는 판단이 가능해 집니다. 이러한 불교성장의 배경에는 다양화와 함께 민중 생활에 파고들었다는 장점과 함께 스스로의 모습이 진실로 종교로써 신뢰받을 수 있는가를 반추해 보는 종교로써의 판단이 사실상 어려웠다는 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본종교의 성장은 근대에 국가권력이 강화되면서 국가가 종교를 대신해 그 기능을 통제할 수 있는 체제로 변용될 수 있는 허점을 허락해 버리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국 일본의 신종교는 이러한 병폐를 배경으로 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제 종교가 협력하는 모습은 근대 일본종교의 특징입니다. 종교들끼리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도 국가 밑에 종속적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한 면이 있지만, 도리어 이 관점은 일본사회에 종교 연합을 너무 낙관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오류도 낳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의 신종교는 전쟁을 경험하며 각각의 교단주의로 세력을 확장하기에만 급급했다는 결점도 떠안게 되었습니다.




1995년 3월이라고 기억합니다만 동경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하여 12명을 사망케 하고 5천여 명을 호흡곤란에 빠지게 한 오옴진리교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의 주동자들이 일본의 일류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었다는 점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일본 사회전반에 걸친 적잖은 문제를 직시하는 사건이 되었다고 판단되는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인성교육을 배제시킨 ‘전문능력’양성의 교육체제가 거론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한국 교육정책에도 시사점이 큰다고 봅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보다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지위를 구축해갑니다. 이러한 교육체제는 일본인에게 인간으로 실패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교양있고 성실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강박관념이 팽배한 사회분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며 본인 또한 성장 과정에서 아주 많은 약한 부분을 잃어버리며 주체의식이 없이 성장했다고 보여집니다. 오옴진리교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기능교육의 한계를 지적하고 교육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구체적인 저항 방법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10여년 전부터 동아시아 종교연구가 네트워크를 만들어, 매년아시아의 협력적 관계를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해하려는 운동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종교를 매개체로 한 아시아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계신지요?




짧은 기간에 이렇게 큰 효과를 거둘 거라고 예상을 못했습니다. 한류붐까지 일어나며 동아시아 교류에 촉진제 역할을 해 준 것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원불교에서 불공의 시간과 대상에 차이를 두고 말하듯이 아주 긴 시간을 통해 양국간에 불신감을 종식시킬 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종교가 모든 사람의 제1의 가치관이기 때문에 종교적 교류는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는데 필수 요건이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교류는 근본을 치유하는 가장 중요한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원불교 사상과 인재들은 이런 부분에 충분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하고 계시는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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