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엔 달이 흐르고 달은 제 마음에 가 닿고
상태바
그 강엔 달이 흐르고 달은 제 마음에 가 닿고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5.06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현장을 찾아서 / 4대강 공사중인 여주여강의 봄





살랑여서 고운 것이 있고 살랑이므로 아픈 것도 있다. 만물이 다정하고 온화했던 유년의 한자락 같은 봄날 오후. 한적한 강가에는 꽃 진 자리만 바람에 살랑, 이 찬란함이 이토록 쉽게 사라지듯 살랑, 한 때 아홉구비 이백리길 빈 데 없이 아름다워 이름부터가 ‘여강(麗江)’이던, 허나 지금은 희뿌연 물결이 살랑, 세월따라 산수가 변하고 초목이 요동쳐도 여전히 한결같은 햇살이 살랑. 강 너머에선 툭탁이며 강을 헤집고 드르륵 소음을 만드는 가운데에도, 5월 초입, 여주 여강의 봄날은 아직 아름다웠다.




이름 모를 새 소리를 귀로 따라가다 그만 마을을 놓쳐버렸다. 이걸 어쩜 좋아, 잘 빗어 넘긴 머리칼에 민들레 홀씨 떨어지듯, 낙화하는 꽃잎들이 허락도 없이 너울너울 마음에 앉는다. 아, 얼굴이며 온몸에 하릴없이 번지는 열꽃처럼 시큼하고 따가운 봄날 오후. 낡은 오리배 몇 마리 삐걱대는 소리 사이로 셋넷다섯, 우와, 하며 퐁퐁 물수제비를 세는 아이들의 웃음이 쏟아진다. 뒤뚱뒤뚱 걷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아기의 걸음마는 이 흙바닥이면 좋으리. 수천수만년동안 숱하게 지나간 발들이 다져놓은 이 탄탄한 흙. 여전히 걸음을, 무게를 더하는 흙이 길 되어 이백리를 굽이굽이 돈다하니, 너도나도 물 한모금에 밀짚모자 하나 쓰고 며칠을 걷고 또 걷는 바로 그 ‘여강길’이렷다. 이 흙과 강 가까이의 고운 모래와, 남한강이 북한강 만나려 내달음 치는 바로 그 애틋한 물살이 하나 되어 그리 봄처녀마냥 새초롬하게 소리도 없이 사람들과 함께 걸어왔다.




뉘엿뉘엿 돛배가 돌아온다. 저 금모래은모래 넘는 해넘이마냥 주홍 돛 내리고 육지에 닿으면, 부추단 이고 장에 나섰던 어미가 돌아오고, 꽃그림 아른아른 꼬까신 든 아비가 돌아오고, 서울서 공부하는 까까머리 오라비가 돌아온다. 누구든 저 배를 타고 돌아오라. 강가 이쪽의 집집마다 저녁짓는 더운 김이 오르고 마암 앞 고깃배가 하나둘 등불을 밝힌다. 누구든, 더운 밥과 사람 정있는 이곳으로 돌아오라. 스멀스멀 잠식해 오는 헛된 욕망일랑 돛배서 던져버리고 빈 몸, 빈 마음으로 돌아오라.


신륵사 저녁 종소리가 흐르고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서야 강가의 봄 밤이 시작된다. 봄볕 대신 콩줄기처럼 새근새근 살포시 별이 뜬다. 한낮도 그리 조용했건만, 어둑해진 사위 따라 이명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의 침묵과 고요가 오히려 귀를 찌른다. 모든 것을 삼킬 듯 맹렬하던 고철덩어리들도 이 달뜨는 강가에선 아기처럼 고요하고 잠잠하다. 저 욕식과 이기심도 여강에 달 오르면 다 한줌 침묵이 되거늘. 미움없이 별빛 받아 반짝이거늘.




기우는 달을 보다, 졸고 있는 아기별을 보다, 텅 빈 내 옆자리를 보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면 그 자리가 바로 내 마음이겠다. 마음 만나기가 이리 쉬워서야 어쩌나, 이 밤은 무심히 허락해주니 나는 어쩌나. 까닭없고 연유없는 외로움도 봄밤에는 오래 묵혀둔 그리움 되는 법이다. 텅 빈 강은 그토록 자기 몸을 헐뜯는 것 들까지도 끌어 안고, 내 마음 마주한 신륵사 강월헌에 앉아 머쓱하니 노래라도 부른다. 강물과 모래와, 환한 그리움 떠올라 노래는 자꾸만 ‘엄마야 누나야’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아, 저 금모래가 바로 이 여강 모래빛이라 하지 않았던가.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변치말고 곱게곱게 강변살자. 울지말고 오래오래 강변살자.


민소연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