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서울에서 온 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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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서울에서 온 놈이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9.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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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인절 특별 인터뷰 2 / 정산종사 친조카 송경은 서울교구 교의회의장



“가족들이 그런 얘기 하지요. 아버지(주산종사)께도 할아버지(구산 송벽조 선진)께도 감사하지만, 이 법 하나 믿고 그 식솔들을 낯선 곳으로 이끌고 오신 정산종사님의 은혜가 가장 크다구요.”


송경은 서울교구 교의회의장(신림교당)은 안부 물을 새도 없이 정산종사 얘기부터 꺼냈다. 바구니 가득 흰 빨래 털어 널 듯 착착 펼쳐놓는 모양새가 인터뷰 요청 후 무던히도 고심하셨던가 보다. 총부에서 나고 자랐으며, 열반 때를 생생히 기억할 만큼 장성했던 덕에 쓰기도 말하기도 많이 했건만, 여전히 어렵고도 긴장된다는 그, 아닌게 아니라 그 무게와 거룩함에 기자의 귀도 종종 바르르 떨렸다.




‘팔타원의 집을 돌아온 도산의 후신’


“어머니(청타원 박길선 선진)께서 어느날 팔타원 황정신행 어른이 유모차에 예쁜 아기를 싣고 와서는 대종사님께 간다며 아기를 좀 맡아달라고 하는 꿈을 꾸셨대요. 당시 팔타원님도 귀한 인연이거니와 유모차도 보기 드물어 이상하다 싶으셨는데, 곧 저를 낳은 거에요.”


당시에는 대종사가 일일이 법명을 지어줬는데, 굳게 봉인해 보낸 봉투를 가져온 것이 바로 정산종사였다. ‘뜯어주시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 자리에서 “이거 서울에서 온 놈 같네”라며 봉투를 열어보니 마침 이름에 서울 경(京)이 들어있었다. 사실, 팔타원이 대종사 뵈러 오면 거쳐야 했던 ‘대종사님 비서 격인 도산 이동안 선진의 후신’이라 불리웠던 송 의장은 “자식들 학비며 생활비까지 몰래 다 대어준 팔타원 어른께 고마워 도산 어른이 그 집으로 갔는데, 자식을 못 낳으니 우리집으로 왔던 거라고 어른들이 그러셨어요. 지금 보면 형제들 중에 딱 저만 서울에 있으니, 어른들 말씀들처럼 ‘참 묘하다’ 싶어요”라며 아버지 같기도 하고 큰아버지 같기도 한 염화미소를 보인다.


며칠 전 형인 융산 송천은(전 원광대학교 총장) 선진께 전화를 해 정산종사에 대해 물었댔다. 총부서 놀다가 정산종사님을 만났는데, “천지에 의심 걸리는 것이 없느냐?”라며 “의심 나는 것은 의단을 갖고 공부하라”는 당부를 받았다는 형의 일화를 전하는 송 의장의 얼굴에 부러움도 살짝 배어나는 것 같다.


“형님이 대학원 방학 때 총부에서 새벽좌선 마치고 윤정훈 선생님과 청소를 하고 계셨는데, 미륵산 쪽에서 둥근 불빛 세 개가 뚜렷하게 올라오더래요. 하여간 난생 처음 보는 빛이라며 신기해하다 전날 전국학생회훈련이 떠오르셨대요. 가서 물으니 ‘거의 연마를 마쳐가는 삼동윤리에 대해 처음으로 공석에서 말씀하셨다’는 대답이 왔대요. 그 서기가 미륵산쪽에서 뻗쳐 왔던 것이지요.”


문득 궁금해 호칭을 여쭈니 ‘직접 불러본 적은 없고, 다만 집에서 칭할때는 큰아버님이라고 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나중에는 종법사님이라고 불렀다’는 송 의장은 인터뷰 내내 ‘정산종사님’과 ‘종법사님’을 번갈아 사용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마냥 뛰어놀기만 했던 어린 시절에도 친조카든 아니든 고루 평등하게 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니, 아마 그 성품에 일찌감치 따로 호칭하기를 삼갔으리라.




평생을 떠올리는 장면


“평생을 떠올리고 또 떠올리는 장면이 있어요. 열반하시기 이틀 전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조카라고 배려해 주신건지 아주 가까이 앉았지요. 말을 거의 못하셔서 시자가 해석하는데, 첫 번째로 손으로 자꾸 네모를 그리시는 거에요.”


당시 역시 청년이던 형 송천은의 “대종사님 영정 갖다 드릴까요?”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던 정산종사의 말을 시자가 가까스로 알아들었다. “영모원의 대종사님 잘 모셔라” 그리고는 이어 “대산, 삼동윤리 한번 새겨보게”하시고는 그 새김에 “옳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대중들은 돌아가라’ 하신 것이 끝이었어요. 딱 두가지 말씀하신 것이지요. 스승님 잘 모셔라, 그리고 삼동윤리 잘 새겨라. 이생의 마지막 말씀이라고는 사적이라고는 티끌 하나도 없으셨던 것이지요.”


이후,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송 의장은 이 생의 마지막을 생각해 왔다는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문득 저 너머 깊은 곳에 가 닿는다.


가족이면서도 가족보다 더 거룩하고, 스승이면서도 스승보다 더 가까운, 그런 뜨거운 인연의 지중함이 내내 풍겨왔다. 혈연보다 더 깊은 인연도 많다지만, 자리를 끝낼 즈음 물씬 밀려드는 거룩한 스승님들을 조금씩 닮아있는 송 의장의 모습에, 내가 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지, 문득 궁금해졌다.




민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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