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토론-연원불淵源佛조항을 어떻게 볼것인가?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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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토론-연원불淵源佛조항을 어떻게 볼것인가?Ⅱ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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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원과 연원불이란? / 김주영 교무(금천교당)

“원불교의 창도자는 자기의 독자적 수도에 의하여 대각을 이룬 것이요. 꼭 불교적 수행만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대각의 연원을 석가모니불에 구한 것은 구도자의 겸허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들어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로와 부합 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서품2장)”고 한 것은 원불교가 불교를 개혁한다든지 또는 불교를 간소화(簡素化)한다든지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불교의 교조인 대종사는 불교를 혁신한 달마대사나 기독교를 혁신한 ‘마르틴 루터’의 입장보다도 바라문교(婆羅門敎)를 배경으로 불교를 창립한 석가(釋迦)나 유태교(猷太敎)를 배경으로 기독교를 창립한 ‘예수’의 입장과 같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도통연원(道統淵源)을 불교에 구한 것은 대종사의 동양인의 자각에서 온 것으로 생각된다.(원불교 개교 반백년 기념문총 384/전 홍익대학장 이항녕(李恒寧) 글에서)
“시자 사뢰기를 ‘우리 회상을 과거 회상의 한 종파로 아는 이가 있나이다. ’말씀하시기를 ‘과거 부처
님께서 바라문의 교리를 인순(因循)하신 점이 있고, 예수께서 구약(舊約)을 연원하시었으되, 불교나 기독교를 과거 종교의 한 종파라 하지는 않나니라.’ 또 사뢰기를 ‘과거 교법과 우리 법과의 관계는 어떠하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주로 창조하시고, 혹 혁신, 혹 인용(因用) 하셨나니라.’”(정산종사법어 경의편39장)
윗글의 ‘도통연원’과 연원은 동학에서 인용된 말로서 일상적으로 현존하는 사람들이 도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자가 연원주가 되어서 그에 의하여 포교된 신자를 자기의 연원이라고 하는데 원불교에서도 ‘입교연원의 의무’가 있다. 그런데 소태산은 유년기에 동학을 수시로 듣고 접하며 성장하였다.
그러므로 연원불이 일개 종파가 아닌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는데 있어서 인용 내지는 혁신의 연원으로서 어느 정도 역할은 수긍되지만 창조의 연원은 우주의 본원과 제불제성의 심인으로서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고, 수행하는 정체성이 확연한 새 종교다.
“이 일원상이야말로 인류가 사색을 시작한 이래로 형이상학적 자연과학적으로 이룩한 성과를 공통화(共通化)시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원불교가 우주의 본체로 상징한 일원상은 종교와 과학의 조화점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한다.(380 / 이항녕)”
그리고 “모든 종교의 교지도 이를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이니라.(정전 교법의 총설)”


‘연원불’은 포용성과 관용성 그리고 겸허함의 의미로서 상생하는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이는 마치
논문을 작성할 시에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므로 표절이나 사이비로 취급받지 않고 정상적인 논문으로 인정되듯이 새 종교로 가는 당당하고 정상적인 한 일면이라고 본다. 아마 원각성존 소태산의 연원은 유, 불, 선, 기독교, 동학 등의 민족종교와 기타 과학, 학문, 사업, 정치(9인 연원) 등이 아니겠는가? 요즘 ‘스마트폰’을 보면 의사전달의 전화기 기능뿐 아니라 사진기, 녹음기, 계산기, 사전, 컴퓨터, 텔레비전, 전축, 디자인(9가지)등 많은 기능이 종합된 것으로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고 있다. 이의 핵심은 도체와 부도체라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반도체(半導體)’라는 최근의 새로운 한 물질이 나타나서 주도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과 사상을 무시하거나 놓자는 것이 아니라 원불
교가 하나의 기존 연원에 안주하여 다양한 연원을 통합 활용하지 못하면 마치 ‘수동식 전화기(연원불)’만 고집하는 것처럼 ‘인용’에 고착되어서 ‘창의’와 ‘혁신’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새 문명을 선도하는 스마트폰을 외면하는 격이다.


원불교가 한 연원에게 안주하여 인용에만 몰두하다가 다양한 연원과 더불어 창의성과 혁신성을 잃으면 정체성 확립과 정립을 살리지 못하고 존재가치는 소멸된다. 이러한 견지뿐 아니라 교법과 중복되는 연원불 조항이 새 회상의 통치 교단법에서조차 거론됨은 불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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