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와 불교의 대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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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와 불교의 대화(4)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10.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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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별기획 / 전수와 회통 - 하 /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사무국장)

둘째, 원불교는 정신과 과학 문명과의 회통을 주장한다.


소태산의 불교개혁의 이유는 도학(道學)과 과학(科學)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나타난다. 여기서의 도학은 불법에 기반한 인류의 선지식들이 이룬 모든 깨달음의 정신세계를 말한다. 원불교 개교의 동기는 정신과 물질의 대립에 대한 심각한 상황을 제시한다. 물질을 사용해야 할 인간의 정신이 점점 쇠약해져 물질의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정신의 세력 확장과 물질의 세력 항복으로 모든 생령을 낙원으로 이끌고자 한다(제1총서편 제1장 개교의 동기)고 한다. 즉, 원불교 탄생의 직접적인 동인은 과학과 물질의 발달에 따른 인간의 노예화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진리적 종교와 사실적 도덕은 이러한 탈 노예화의 방법을 말하며, 이것은 곧 불법의 현대적인 대응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태산은 이러한 물질에 대해서는 금욕주의와 같은 배척이 아니라 선용하도록 가르친다. 그는 불법을 축으로 한 정신문명, 즉 도학과 물질문명의 발전을 함께 이루어 영육이 쌍전하는 세계, 즉, 양자가 회통되는 세계야말로 완전한 세계라고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정신 아니면 육신에 병이 든 불구자라고 한다.(교의품31장) 이러한 언급은 최근 서구에서 불교의 진리관이 과학의 그것과 상통한다고 보는 다양한 연구들에 의해 지지받는다.


이러한 도학과 과학의 병진은 단순한 병렬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태산은 도학을 확립하는 방법으로 마음공부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 마음 닦는 도학 공부는 “모든 학술의 주인이요, 모든 공부의 근본(대종경 교의품 28장)”이 된다. 이를 달리 말하면, “도학은 주가 되고 과학은 종”되며, “이 본말과 주종을 분명히 알아야만 비로소 도를 아는 사람(대종경 인도품 5장)”이 된다.


그러나, 소태산이 말하는 도학은 앞에서 언급한 불교와 원불교의 삼학에 기반한 심전계발이라고 하는 수행 체계에 기반해 있다. 그는 “심전을 발견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심전을 계발하는 것을 양성(養性)과 솔성(率性)(대종경 수행품 60장)”이라고 하여 이 공부야말로 과학문명을 이용하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고, 종교의 역할 또한 이것에 있다고 본다.


셋째 영과 육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육쌍전, 즉 영과 육의 일치, 종교적 삶과 경제의 조화와 회통을 주장한 것이다.


불법연구회는 전통적으로 불교 경제공동체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소태산이 대각 후, 처음으로 한 일은 경제공동체의 구성이었다. 소태산 스스로 조합장이 되어 근검절약을 통한 기금을 확보하였다. 이 저축금을 기반으로 방언을 막아 간척지를 기성조합은 물론 상조조합, 수신(守信)조합도 소태산과 제자들이 만든 조합이름이다. 16세기부터 불교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찰계가 성행하였지만, 소태산과 같은 본격적인 근대적 협동조합운동으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소태산은 불법을 전면에 내건 조합운동을 지역 주민과 함께 일으킨 것이다. 즉, 근대 개혁불교의 협동조합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동을 통한 공동체의 근본정신은 중국 선불교로부터 시작된다. 중국 백장 선사(百丈禪師, 720~814)의 백장청규(百丈淸規)는 이러한 노동과 수행의 일치를 주장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선종 청규의 의무조항이자 공동출역를 뜻하는 보청법(普請法)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을 주장한 백장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초기 불교에서 노동을 통한 경제 활동은 계율로써 금지된 것이다.


초기 교단의 계율을 초월한 이러한 선불교의 혁명과도 같은 정신은 소태산에 의해 사회공동의 경제활동을 이끈 철학이 된 것이다.


소태산이 불교적 이념에 기반, 무지한 농촌사회를 배경으로 이러한 협동조합 운동을 일으킨 것과 유럽의 협동조합운동이나 크로포토킨의 상호부조사상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이처럼 불법을 매개로 동서양의 사상이 소태산에 의해 현실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협동조합운동은 원불교의 평등한 사회윤리를 정립하고 실천하는 방향이 되었다. 이 운동을 이어 정립한 교화, 교육, 자선의 3대 사업은 불법연구회의 이러한 경제활동이 보다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불법의 사회윤리로서 확립된 것은 사요의 교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확립된 사요는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 숭배를 말한다. 이러한 교의는 인권, 지식, 교육 평등과 공공선(公共善)의 실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원불교의 특징은 불법의 사회적 실천이 교의에 반영된 점이다. 소태산은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만들기 위해서는 견성(見性)과 양성(養性)만을 주체로 할 것이 아니라 솔성(率性)도 주체로 할 것을 밝혔다.


즉, 출세간 공부하는 ‘공부의 요도’와 함께 세간생활하는 ‘인생의 요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 공부와 인생의 요도는 삼학팔조와 사은사요인 것이다. 인생의 요도는 삶의 윤리를 어떻게 불교적 관점에서 수립할 것인가에 대한 교의적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원불교의 경제공동체운동의 이념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 선(禪)의 정신, 불교의 사회적 윤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결국, 원불교는 불교의 현실참여의 하나의 표본인 것이다. 이처럼 전통 불교와 원불교는 내적 외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야말로 불교의 과거와 현재가 꾸준히 대화해 온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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