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길거리보다
상태바
차디찬길거리보다
  • .
  • 승인 2015.01.27 0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오윤경 교도 / 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 에너지팀장



지난 12월 23일부터 시작한 인권투어 둘째날, 과천 코오롱 본사 앞 농성장을 방문하고 다시 서울로 들어오는 도로 위는 이미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반짝거리는 등과 함께 찾아온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은 여의도에서 시작해 마포, 공덕을 지나 충정로까지 3일차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해고자들을 향하는 안타까움을 모르는 듯 어둠과 함께 찾아왔다.


성탄절 날 누울 곳을 찾지 못해 결국 가장 낮은 곳, 마굿간 말구유에 누워 계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듯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이미 행진을 마무리하고 충정로 종근당 앞 차디찬 인도에 앉아 정리 집회로 문화행사에 참가하고 있었다.(사진) 하루 종일 찬 바닥에 엎드리느라 까맣게 변해버린 하얀 소복은 10년간의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겪었을 참담함일 텐데 그날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노래에 화답하는 해맑은 그들의 얼굴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강한 외침이었다.


6년간 정규직화를 위해 단식과 고공농성 목숨을 걸고 싸운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2010년 11월 1일 노사가 정규직복직 합의를 하였고 이들 조합원 10명도 회사로 돌아갔다. 그런데 회사는 월급도 주지 않다가 1년 전 약속한 노사 합의를 어기고는 기륭전자 조합원들을 버리고 도망갔으며 주식도 상장폐기해 버렸다고 한다.


“이젠 갈 곳도 없고 싸울 상대도 없어져 버린 참담한 상황”이라고“목숨을 걸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사회적 물음을 던지고 싶다”고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이 전했다.


다행히 동방박사 3인 목사님, 신부님, 영화‘카트’의 제작사가 전하는 선물에 이어 마지막 노래와 함께‘세월호를 기억하는 원불교인들의 모임’에서 서울, 경인교구가 함께 마련해준 기금으로 준비한 방한복과 지원금과 함께 ‘오롯이 연대’라는 답을 전할 수 있었다. 우리도 동방박사가 되어 시청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C&M 케이블 방송 노동자들의 파업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 파업은 회사 매각을 앞두고 고용승계 및 임금인상안을 협의하던 도중 협상결렬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히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임금 20% 삭감을 제안함으로써 노조차원의 파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고.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차별적 처우로 서로 경쟁을 조장하는 노동시장 풍토에서 파업을 같이 하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8월부터 월급을 털어‘생활비 채권’을 1인당 매달 20만∼50만 원씩, 지금까지 120만 원어치 샀다고 한다.


모인 돈은 해고자들의 생활자금으로 쓰여지고 이렇게라도 연대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이길 방법은 없을 거라고. 결국 이렇게 연대하는 힘들이 2014년 마지막날, 해고자 83명 전원복직, 파업기간생활비 지원, 업체변경시 고용승계 의무화, 임금인상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게 했나보다.


아직도 충정로 거리에서 본‘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장그래법을 반대한다’는 문구가 가슴에 박혀 있다. 미생에서 보여준 장그래의 비정규직의 억울함과 불안감이 오체투지와 고공농성을 통해 그 애환이 전해지는 듯하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비정규직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법안은 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든다.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되는 일자리라면 그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아닌가. 세계화와 노동 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에 응하여 1996년 신한국당이 통과시킨 비정규직 법은 쉬운 해고와 적은 임금, 불안고용, 정규직과의 차별 등으로 노동시장의 노동자들을 모두 상품에 불과한 경쟁자로 만드는 비민주적이고 불공정한 노동악법이다.


영화‘내일을 위한 시간’처럼 동료의 복직과 보너스 중 선택하라고 사장이 내미는 잔인한 투표 용지를 받은 우리의 선택은?


비가 내릴 땐 널어놓은 이웃집 빨래는 같이 걷어주고 장독대 뚜껑도 덮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세탁에서 건조까지 해결해주는 세탁기가 있어 대신 걷어줄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점점 편한 세상이 되어지는 만큼 점점 이웃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내 가족만 내 자식에게로만 쏠리는 관심과 모든 에너지를 낮은 땅에서, 높은 하늘 위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가며 생존보다는 공생을, 등을 보이기보다 품을 내주고, 편가르기보다는 곁을 지켜주는 선택이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