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그날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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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그날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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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2.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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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복녀(신우) 교도(송천교당, 원불교 탈핵정보연구소 소장)



한울안신문과 원불교환경연대가‘즐거운 불편’과 동행했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사회는 작은 것과 느림의 미학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많습니다.


빠름과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어버린 ‘물질’의 길이 아닌 작고 단촐한 느림의 ‘정신’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일본을 통해 원불교 100년의 나침반을 돌려봅니다.
- 편집자 주



개찰구를 나가자마자‘나무늘보’클럽회원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준다. 수다스런 인사를 마치고 준비해 간‘굿바이 핵발전소’‘월성1호기 수명연장 반대’펼침막과 일본인들에게 넘겨받은‘재가동 반대’피켓을 지하철역에서 펼쳐들고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밖에서 울려대는 구호와 악기소리가 지하철역 안까지 울린다.


그렇다, ‘여기’는 일본 수상관저 앞이고‘지금’은 금요일 저녁이다. 대형 지진 여파로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아직도 수십만의 이재민이 피난살이 중이다. 날마다 수천의 인부들은 사고 뒤 처리에 목숨을 건다. 감옥에서 참회 중 이어도 모자랄 도쿄전력 간부나 찬핵인사들은 공공연히 핵발전소 재가동을 언급하며 도쿄에서 제일 먼 지역부터 핵발전소 재가동 일정을 내놓는다.


가만히 있기’힘든 전국의 시민들이 수상관저와 국회로 모이기 시작한지 3년, 이제 금요일 저녁이면 당연하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수상관저와 국회의사당 주위를 인간띠로 이어낸다. 디자이너 한 명이 처음 제안한 수상관저 앞 시위는 수백에서 십만 명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경악, 분노, 슬픔, 질림, 불안.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에 대한 감정을 함성으로 또는 소리로, 악기와 춤으로 나누며 핵발전소 재가동 움직임을 막아 내고 있다. 수상관저 앞 시위는 한 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후쿠시마를 잊지마! 재가동 하지마!”반원전 통일행동을 주창하는‘수도권 반원전연합’이라는 연대단체가 있지만 금요집회의 한 자리를 차지할 뿐이다.


수상관저 에워싸기 집회는 주로 관저, 국회정문, 경제산업성, 문부과학성,재무성, 외무성, 후생노동성, 도쿄전력 앞에서 연다.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참여단체의 어필보다는 개인의 의견을, 단체 깃발보다는 내용을 담은 깃발을 올리자는 당부는 이날 수상관저 집회의 자연스러움을 설명하고 있다.


어느 문 앞에는 스님들이 북을 치고 있다. 1993년부터‘원자력 행정을 추궁하는 종교인모임’을 결성해 활동해온 분들이다. 일련종 스님 복장과 치고 있는 홑겹 북이 낯설지 않다. 조금 더 걸어‘일본음악가협회’깃발이 보이고 노래를 부르는 그룹을 만났다. 우리도‘바위처럼’으로 화답하며 연대의 노래를 함께했다.


어느 부인은 내 손을 붙잡고 흔들며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지내자, 일본에서 이상한 소리해대서 미안하다”며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좀 더 걸으니 담벼락에 놓여있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 온다. 세월호 침몰 장면 아래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사람이 사람들한테 확성기로‘안전하니 거기 있으시오’라고 외치는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세월호와 핵발전소 아주 많이 닮은꼴이다.


국회 쪽의 간이 연단에서 강해윤 교무님이 연대발언을 했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으니‘수도권 반원전연합’펼침막이 보이고 작은 무대에서 중년 신사가 트럼펫을 분다. 일본에서는 누구나 알만한 옛 노래 연주에 예전의 안온함을 그리워하거나 노랫말처럼 각기 고향을 떠올리기도 했으리라.


여기서도 강해윤 교무님이 연대발언하고 내려왔는데 아주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노래로 구호를 제창하고 악기로 장단을 맞추는데 흥분의 에너지가 넘쳐 모두 한 덩어리가 된다. ‘아이를 지키자’‘생명을 지키자’‘고향을 지키자’‘바다를 지키자’‘재가동 반대’‘재처리 반대’‘노모어(no more) 후쿠시마’ ‘듣고 있나 아베’명쾌하고 통쾌한 구호들이다.


오늘 같은 집회가 전국에서 200곳 정도에서 열린다고 한다. ‘핵 발전 반대자는 비국민’이라는 소리에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불법집회’에 참여하는 일이 일상이 된 일본 할머니, 태어날 아이가 핵시대를 살아야 하는 불안한 젊은 엄마, 더 이상의 핵공포를 손주에게 안기고 싶지 않은 할아버지들이 반핵을 평생 업으로 삼고 나섰다.


일본은 후쿠시마 대재앙을 겪고 나서야 54기의 핵발전소를 멈췄다. 대만에서는 마지막 건설이라던 제4핵발전소를 공정률 98%에서 멈추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수명이 끝나 멈춰선 위험천만한 월성1호기를 수명 연장해 돌리려고 한다. 핵공학자들 조차도 안전에 위험이 있다는 그런 핵발전소를 말이다.


“후쿠시마 사고이후 3년간 우리가 막아냈던 것처럼 핵발전소 재가동은 못합니다.”이것이 수상관저에 모인 일본인들의 마지막 희망인 듯 싶었다. 그나마 핵 재앙의 땅 일본에서 희망을 건저올린 건 일본의 보통시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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