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조국의 딸이니-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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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조국의 딸이니- ②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11.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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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복70주년 특별기획_여성이 주도한 독립운동의 재조명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에는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2015년 정부가 인정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는 13,930명으로 그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248명, 전체의 1.78%에 머물고 있다. 독립운동가로서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을 제외하고는 독립군 지원활동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정부로 부터 서훈 받지 못한 이들을 참으로 많다.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것이 어디 여성들뿐일까? 조선 천지에 대한독립을 외치치 않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일제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독립운동가들은 만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일제의 시야에서 벗어나 독립운동을 펼치기가 좀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만주로 간 여성 독립 운동가들은 때로는 무장(武裝)으로 때로는 든든한 후견인으로 대한 독립에 맹활약을 펼치지 시작했다.


소위 독립운동‘판’에서 여성들에 대한 교육과 이에 따른 사회적 활동이 점차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남녀가 평등하게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외부적으로 독립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남성들과 함께 총과 폭탄을 들었으며, 목숨을 내놓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사격 연습을 하는가 하며, 군자금을 대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독립운동의 가교의 역할과 독립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의 희망을 이어나갔다. 60이 넘는 나이에도, 임신한 몸으로도 조국을 위한 일이라면 그녀들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채호의 아내 박자혜, 여성 의병장 윤희순, 양양 3·1운동의 주역 조화벽, 만주에서 일본대사를 격살하려다 체포된 남자현 등 수많은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우리의 역사와 함께 있다. 그녀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장벽을 허물며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만들어갔다. 나약한 여성이 아닌 조국의 딸로서 이룬 투쟁이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大覺)을 이루던 때 역시 일제의 탄압이 극심한 시절이었다. 대종사는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지혜롭게 민족의 자립정신을 강조하였다. 대종사는“만세운동은 일본의 압정에 대한 단순한 항쟁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 민족 자각의 외침이요, 나아가 새 세계의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喪頭)소리다. 지금 우리는 때가 급하고 바쁘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단체는 다 그때에 맞게 진리가 부여한 사명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들이 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수많은 여성 교역자들을 양성하여 남성과 동등한 권한으로 현장에서 활약하게 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누군가의 아내로서 또는 누군가의 딸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오늘의 역사를 살아야 한다. 이는 소태산 대종사가 역설한‘남녀권리동일’과‘공도자 숭배’의 실천적 측면이기도 하다.


과거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오늘의 거울로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야 말로 그녀들이 남겨놓은 최고의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끝)


조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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