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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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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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8.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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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숙 방학교당 봉공회장
원기 70년 2월 정월대보름이 돌아오는 때였다. 초창교무님께 “보름에 김을 좀 갔다 팔아서 교당에 쓰면 이익금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말씀드렸다.
교무님 말씀 “아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마땅히 할 사람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데 그럼 정숙 씨가 해 보세요”하신다. 그때 나는 봉공회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청한 일이 바로 봉공회 일이 된 것이다. 어느 때에는 어렵고 힘들 때가 더러 있어도 내가 자청해서 한 일이기 때문에 교무님께 그만 두겠다는 말씀을 못 드렸다.
처음에는 친구가 건어물을 하는지라 갔다 팔아서 원금을 계산해주고 수익을 남겼다. 교도님 수도 20명도 될까 말까 하였고 그렇게 큰 교당이 못되어 알뜰하게 모아놓은 자비 30만원으로 봉공회 자본금을 하겠다고 교무님께 말씀드렸다. 그게 자본금이 되어 김을 사다 팔고 하였는데 한번은 나머지를 동네에 가지고 다니면서 팔았지만 결국 물건은 남아있고 날씨는 더워져서 김이 빨간색이 되어 가랑닢처럼 되어버렸다. 너무 걱정되어 교당 냉장고와 우리 집 냉장고에 갔다두었다. 그런데 그 무렵 교당에 못 가게 될까봐 남편과 싸우지 못하고 살던 때였는데 그날은 남편과 원불교 문제로 크게 싸움이 벌어졌다. 그날 비가 많이 오다가 약간 그치기는 했지만 봉공회 김 몇 톳을 남편이 꺼내 마당에 던져버렸다. 나는 엉엉 울면서 맨발로 뛰어나가 김을 주워들고 옷자락에 닦으면서 안으로 들어와 하염없이 울고 결국 그 김을 교무님과 내가 값을 내고 집에서 구워먹은 일이 있다.
또한 참기름 장사를 많이 했다. 정읍에서 참깨 한가마를 사서 고속버스에 싣고 올라온다. 방학역에 와서 내려야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걱정이다. 이 무거운 참께 한가마를 내 힘으로 어떻게 내릴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버스가 방학 역에 도착하자 나도 모르게 참깨 한가마를 번쩍 들어 내린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스스로 놀라 이것은 진리의 힘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교도님하고 같이 기름을 짜고 판매를 하면 일할 때 힘들어도 얼마 안 되는 이익금이나마 봉공회 기금으로 모으게 되어 즐거웠다. 그 밖의 전라도 먹갈치, 쥐포, 굴비를 교당에서 팔고 남으면 동네 다니면서 팔아도 신이 났다. 봉사! 댓가없이 일을 하고 남을 도와주는 일이 봉사다. 봉사 그 말만 들어도 흐뭇하고, 따뜻한 느낌이 돈다.
수락산 요양원에 가서 목욕봉사하고 오면 보람 있는 하루를 보낸 것 같아 흐뭇했고 집에 와서 시어머님한테 더 잘해 드리고 싶어지곤 했다. 교무님 교도님들과 함께 다녀오면 더 즐거운 일이 없었다. 한국보육원에 가서 할 일이 있다는 그 자체만도 감사한 일이라고 느끼고 살았다. 또 번동복지관에서 봉사를 하다 반찬이 맛이 있으면 꼭 집에 와서 시어머님께 해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년에 한두 차례 보은장이 서울회관에서 열린다. 그 이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참 좋은 일에 쓰인다는 말씀을 들으면 웬지 내가 높이 뛰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보은바자회가 열리면 이인성 주무님이 세타종류를 판매할 때도 있었는데 팔고 나머지를 역시 동네판매 하셔서 이익금 전부를 봉공회에 넣어주시곤 했다. 어느해 바자회 때는 우연치 않게 에스콰이어 핸드백을 만드는 공장을 알게 되어 보은장날 품목으로 내고 판매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에스콰이어 핸드백에 관련 있는 교도가 그것을 보고 본사에 신고를 했다. 그래서 공장이 한 달간 영업정지를 당했다고 사장님이 달려왔다. 그 분이 교무님한테 상황설명을 해달라고 하여 우리는 그 이익금을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썼고 개인이 갖은 게 아니라고 잘 써주었지만 효과가 없어 을지로에 있는 본사로 찾아가서 그 사장님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익금 조금되는 돈은 원불교에서 이웃을 돕는 기금으로 내놓았고 다시는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잘 이야기를 해서 영업정지를 풀어주었다.
열심히 자금을 모으고 그 기금을 교당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약간씩 지출해서 썼다. 또한 바자회 때는 양말을 몇 해 판매를 했는데 잘 팔리지 않아 반품도 안 되고 해서 일년 내내 팔아도 남아있었다. 결국 자비로 사서 원광대교학과 학생들한테 보낸 적도 있다.
어느 해 2, 3년 동안에는 전라도식 쌀 강정도 판매를 했는데 아침에 정읍시장을 가서 쌀강정을 해서 밤에 올라오면 새벽 2~3시에 우리교당에 도착했다. 그때 밤운전이 위험하니까 운전사에게 자꾸 말이라도 시켜야 한다. 그때 2대 교무님이신 강해선 교무님이 계실 때였는데, 쌀 한 가마 두 가마 이렇게 만들면 15인승 봉고차에 빈틈없이 실려진다. 교무님하고 나하고 기사가 거들고 2층으로 짐을 내리면 교무님은 주무님 얼굴빛이 창백하다 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다. 집에 돌아오면 식구들한테 미안하고 볼 낯이 없고 또 어디 아프다고 힘든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요근래에는 옛날 한과를 먹지 않아 다시 품목을 바꾸어 했다.
3대 강법신 교무님이 부임해서 오셨다. 교당 사정이 어려워 월세 내는데 온갖 신경을 쓰시고 조그마한 집을 사서 관리를 하고 조금씩 월세나온 돈을 받아서 보탬이 됐지만 어쩌다 보니 교당 대지 72평 마련하는데 교도님들의 희사금을 모아도, 있는 자산 다 합쳐도 땅값이 많이 부족하여 봉공회에서 1천만원을 보탰다. 그 얼마나 고생 끝에 얻어진 열매인가! 그 때의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슴 뿌듯한 일이였다. 그리 해놓고 나니 봉공회 자금이 단 10만원도 없이 지내는데 어느 날 원봉공회 회장님이신 김혜전 회장님의 전화가 아침 일찍 걸려왔다. 원불교 봉공회가 법인체로 승인됐다는 말씀이셨다. 기금 얼마를 나라에 입금을 시켜야 되고 각 교당은 최하가 100만원은 내야 되는데 어떻게 협조를 부탁 하시는 거였다.
나는 “저희 교당은 교당 마련하면서 땅값이 모자라 1천만원을 교당에 보태고 잔고가 10만원도 없지만 어떠한 일이 있어도 100만원은 내겠습니다”하고 말씀을 드렸다. 그 다음 법신 교무님한테 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공중사를 단독으로 처리했다는 말씀이셨다. ‘내가 쓰냐’고 ‘당연한 일 아니냐’고 대들었다. 나중에 “제가 잘못 했습니다”하고 말씀을 드렸다.
어느 해 가을 바자회 때는 김치를 내보자고 했다. 김치류를 내서 했었는데 교당에 가면 교도님들의 아낌없는 칭찬에 교무님의 칭찬에 어려움도 잊은 채 많은 교도님들의 협조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봉사하고 교당 일하고 그 힘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 지금 이렇게 잘 풀려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천당이다 지옥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며 뛰고 뛰는 몸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 동안 마음공부에, 봉사에 ‘잃은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지친 정신 육신을 조금 쉬고 싶기도 하다. 나같이 재미없고 힘들게 사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나. 봉공회 일도 잠시 쉬어보고 싶은 마음이고 법회도 쉬고 싶은 생각이고 그동안 마음공부 했어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봉사를 쉬면서 봉공회 일도 쉬어보니 오히려 사는 게 지옥 같았고 더 힘이 없고 슬픈 생각만 들었다. 남을 도와주면서 사는 게 좋은 것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지옥에서 지옥인지도 모르고 잘못이 없고 남의 허물만 생각하면서 지친 마음뿐이였지만 법회를 보면서 교도님들 얼굴 대면하니 힘이 났다. 어느 일요일 설교시간에 이삼덕 교무님께서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설교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도 그 갈매기처럼 인생을 다시 시작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원기86년 가을 바자회가 열린다. 준비를 우리 집에서 하는데 할머님 교도, 젊은 교도와 함께 작업을 하였다. 힘든 줄을 몰랐다.
서울의 각 교당에서 각자의 솜씨 자랑이라도 하듯이 넉넉한 장이였다. 항상 바자회 때 제일 먼저 새벽에 나갔고 유서윤 부회장님께서 파장에는 꼭 태워다 주셨지만 여러 교도님들의 한 마음 한 뜻이 된 분위기와 각 교당 교무님들 모습, 일년에 한번이라도 뵐 수 있어서 좋았다. 늘 본 것처럼 반겨주고 칭찬해주시며 한 가족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우리 방학교당의 남녀노소할 것 없이 수고하신 교도님들의 정성과 사랑, 배고파 서로 입속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 교도님들. 이게 바로 천당이고 활기 넘치는 큰 기운이 감도는 서울 회관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는 이 법을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평생 봉사하면서 살게 해주시고 다시는 변심하지 않는 불자가 되기를 간절히 빌고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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