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행복 - 봉사인생 40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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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행복 - 봉사인생 40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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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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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수 교무 " 강남교당
무희들의 비단 끈을 잡고 춤을 추었던 축제의 밤, 나는 그날 밤 끝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호흡곤란으로 누워도, 일어나 앉아 봐도 도무지 편치가 않았다.
내쉴 만한 숨이 나의 깊은 폐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고산지대에서 고도 순응의 고통이 무엇인가를 단단히 경험했던 하룻밤이었다.
높고 높은 히말라야의 설산 3600m 고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곳.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부적합하고 험한 히말라야 산골짜기에서 최초로 살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누가 평지를 버리고 높고 춥고 깊은 산중까지 올라왔을까?
라다크 지방의 히말라야 산중에 흩어져 사는 사람이 15만명이나 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외부인이 라다크 땅을 처음 밟기 시작한 것은 1974년부터이고, 이곳에 공항이 생긴 것도 81년 군사목적에서였다고 한다. 라다크까지 도로가 나 있기는 해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9개월 동안은 눈과 얼음 때문에 통행이 불가능하고 고작 3개월 동안만 산 아래와 왕래할 수 있는 곳이니 지구촌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라다크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간도 3∼4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 농작물은 보리와 밀이 재배되며 과일은 작은 사과와 살구뿐이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는 마침 6월이라 농사지은 무 당근 옥파 등을 길거리에 벌여 놓고 저울에 달아 팔고 있었다.
그 물건을 팔고 있는 여인들은 우리 옛 시골 아낙네 모습과똑같아 보였다.
특히 인도 여자들은 아기를 앞가슴에 안고 다니는데, 라다크 여인들은 아기를 등에 업고다녀서 그것도 우리네와 같았다. 옴마실라 호텔 텃밭에는 쑥갓과 아욱이 자라고 있고 뜰에는 접시꽃이 피었는가 하면 원추리도 눈에띄었다.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먹고 사는 식물이 히말라야 산중에서까지 같을 수가 있을까?
라다크 사람들은 양 야크 소 개 등의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가축은 1층에서, 그리고 사람은 2층에서 생활한다. 6개월 이상의 긴 겨울 동안 기온이 섭씨 영하 20도에서 30도까지 내려가 혹한이 계속되지만 히말라야 설산에는 땔감 나무가 없다.
라다크 사람들은 가축들의 도움으로 땅에서 올라오는 얼음 같은 냉기를 차단하고, 짐승들의 똥을 말려 취사용 연료로 사용한다.
그곳 사람들은 주방과 거실, 그리고 침실이 한 공간 안에 있어 취사할 때 나오는 열기로 방안의 온도를 보존하면서 겨울을 견딘다. 그러나 라다크 사람들은 그 긴 겨울 동안을 각종 축제를 즐기면서 지낸다고 한다. 누군가는 라다크를 인류문명으로부터 100년쯤 뒤떨어진 곳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다크 사원 내부 벽에 그려진 불화(佛畵)나 만다라는 그 정교함과 찬란한 색상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세계불교미술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불화나 만다라가 있는 큰 사원들마다 모두 큼지막한 자물쇠통이 법당문에 채워져 있었다. 히말라야 깊은 산속 사원에 웬 자물통이 등장했을까 하고 의아했지만, 아마도 그 귀중한 불교문화재를 보호·보전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는 북인도 땅이지만 기후나 지형, 건축양식, 그리고 종교와 문화, 의상과 언어까지도 티베트와 흡사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곳 모든 사원마다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사진을 모셔 놓고 있었다. 현재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한 인도에서는 불교의 교세가 미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인도 속의 이국이라 불리는 ‘작은 티베트’ 라다크에서는 불교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 그리고 건강한 불심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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