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명화 정릉교당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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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명화 정릉교당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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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3.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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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법대로만 살면 저절로 복록이 쌓여…
원불교 법대로만 살면 저절로 복록이 쌓여…

정릉교당 법회시 제일 첫자리에 앉아 교무님의 설교를 꼼꼼이 적고 있는 사람! 후진들은 그 모습을 보며 따라서 적는다. 설교를 들을때 필기를 하면 지루하지 않고 집중하게 된다는 것을 이은명화 교도는 말하지 않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호타원 이은명화 교도! 팔순을 훌쩍 넘긴 노구의 몸이지만 아침부터 법회출석을 위해 서초동에서 정릉까지 걷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차에 몸을 싣는다.
“공부도 젊어서 많이하고 사업도 젊어서 많이하고, 교화도 젊어서 많이해라.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 누구한테나 들을 수 있는 흔한 말인것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닌 속깊은 원불교인의 말이다.
이 교도는 여자로서는 대범하고 강직하여 처음 대하는 교도들은 어려워하다가도 아낌없이 챙겨주는 세정에 교당내에서 ‘어머니’라 부를만큼 따르는 후진들이 많다.
이 교도는 원불교 법대로 사는 첫번째는 대종사님께서 제시해준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확실하게 실행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한 달에 한번하는 교화단회에 꼭 참석하여 정기일기를 점검하고 단원들과 감각감상 등을 발표했으나 근래에는 응급병동에 입원할 정도로 심하게 병고를 치른탓에 한쪽눈이 잘 보이지 않아 글쓰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이 교도의 마음은 아직도 소녀다. 교당에서 참가하는 교구합창제에서 소리높여 노래도 부르고 싶고, 한달에 한번 교도들이 강단에 서는 교리실천강연도 하고 싶지만 기력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아쉬워한다.
원기40년에 박효진교도의 연원으로 입교한 그는 정릉교당 초창당시 금융권(한국은행 등) 교도들이 주축을 이루며 교당 살림을 꾸려 나갔던 멤버중 한사람.
황해도 서흥출신인 그는 그시대에 숙명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을 비롯해서 집안에 전문의만 다섯명을 둔 명문가를 이루었다.
자식들도 거의가 입교하여 각 교당에 분산되어 출석하고 있다. 큰며느리는 영동교당에, 큰딸은 여의도교당에, 막내딸은 정릉교당에 어머니와 같이 출석한다. 이 교도는 “대종사님의 대도정법에 귀의하여 많은 은덕과 복락을 누렸다”면서 “5남매와 9명의 손주들 그리고 그 자손들이 세세생생 대종사님의 법을 이어받길 염원한다”며 두손을 모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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