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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원정
  • 승인 2005.05.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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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를 의지해 살아온 25년 ... 민은상 화정교당 교도
“두 딸과 사위, 외손녀들과 함께 교당에 들어설 때면 마냥 뿌듯해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원불교에 발을 내딛었던 민은상 교도는 25년이 지난 지금, 일요일이면 10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화정교당에 들어선다.
큰 딸(안선도 교도)이 98년 쌍둥이를 낳으면서 “갑작스레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이 안쓰러워 잠시 도와주러 왔다 함께 살게 되었다" 는 민 교도. 역시 두 아이의 엄마인 둘째 딸(안선인 교도)도 언니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다. 두 딸이 액세서리샵을 운영하고 있어서, 민 교도는 11살(장호선), 9살(김묘정), 8살 쌍둥이(장서형, 장서공), 6살(김보현)인 손녀 5명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갔다오면 집에서 간식도 챙겨주고 학원도 보내며 딸들의 빈 자리를 채워준다. 아직 미혼인 막내 딸(안선경 교도)만 직장을 다니면서 허리디스크 수술로 힘든 일을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 일도 하는 등 아버지(안윤철 교도) 곁을 지키고 있다고.
1980년 남편의 친구 부인(이요진 교도. 의정부교당)으로부터 입교를 권유받았다는 민은상 교도는 “몇 달을 망설이다 집 근처에서 연희교당을 처음 찾았는데 교무님이 맨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고 기억을 더듬는다. “똥도 버릴게 없는 귀한 며느리"라고 예뻐해 주시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연이어 친정아버지마저 세상을 등져 마음의 의지처를 찾고 있던 그녀의 삶에 이후 원불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고.
순교를 자주 오신 교무님의 정성으로 온 가족이 입교를 했고, 남편의 사업실패로 일자리를 찾던 민 교도는 85년부터 ‘화동침구"에서 일하게 됐다. 신앙과 수행에 빈틈이 없었던 김명환, 백기덕 두 분 어른들과 생활하면서 그녀는‘원불교인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체득했고, 두 분 법담하는 것을 들으며 신심도 많이 자랐다고. 세 딸 역시 엄마를 본받아 학생회,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했고, 큰 딸은 원숙회 회장을 하면서 고원회 회장이었던 남편(장준태 교도)을 만나 결혼을 했다.
민 교도는 “원불교 덕분에 우리 딸들은 사춘기라는 걸 아예 몰랐다"면서 “그렇게 화동침구에서 8년 간 익힌 노하우로 93년에는 내 사업을 시작, 딸들을 결혼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그녀는 96년 다리에 마비증상이 와 척추디스크수술을 받는 등 건강상 어려움과 이후 불어닥친 IMF한파로 98년 가게를 정리할 무렵엔 “다들 전세금 반환 청구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권리금까지 받고, 물건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던 것은 ‘기도의 위력"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천방지축 떠들던 아이들도 할머니가 기도를 시작하면 문을 닫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 논다. 6살짜리 막내 보현이까지 "일원상서원문"을 외우고 독경도 척척이다. 소꿉놀이 할 때도 교무님 놀이를 할 정도로 신앙심이 밴 아이들. 2003년 화곡지구 대법회 때 쌍둥이 손녀 중 장서공은 다섯 살 나이로 ‘대천기의상"으로 시작하는 ‘대종사의 십상"을 외워 상을 받기도 했다고.
“내 안의 부처를 잘 모셔야 다른 사람도 부처로 섬길 수 있지 않겠어요?"

서원정 기자 swon@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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