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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울안신문
  • 승인 2005.06.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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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련 가족심리상담센터 실장
“그리고 싶었던 그림도, 하고 싶던 상담공부도 원불교와의 인연으로 시작했죠”
봉사활동이 계기가 되어 공부를 시작하는 등 교단 내에서 하고 싶은 활동을 다 할 수 있었기에 원불교가 더욱 감사하다는 정조련 등촌복지관 상담실장(호적명 정경숙). 원남교당 학생회 초창멤버로, 잠실교당 창립주로, 봉공회 초창멤버, 여성회 창립멤버 등 유난히 ‘문열이’ 역할을 많이 한 정 교도는 “오히려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겸손해했다.
창덕여중 1학년 때 종로교당 앞을 지나다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교무님이 학생들과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좋아 교당 안까지 따라 들어갔고 자연스레 심고도 올리게 되었다는 정 교도. 정조련 교도의 어머니 김영태 교도(원남교당)는 젊어서부터 원불교를 신앙했지만,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법회에 따라다니던 시절이 아니라 ‘원불교’,‘교무님’,‘교당’이란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단다. 그날 있었던 얘기를 하며 서로 신기해하던 두 모녀는 일단 종로교당 학생회에 다니기로 했다고. 얼마 후 정 교도는 원남교당 학생회 창립멤버가 되어 친구들과 땅콩 팔러 다니며 교당신축 기금을 마련하고 벽돌을 져나르며 원남교당 짓는데 힘을 합했다.
외국어대 졸업 후 대한항공에 입사한 그녀는 남편 오영세(잠실교당 초대 회장)교도와 결혼했고, 당시 기독교에 심취해 있던 남편은 신혼여행을 익산 총부로 가면서 바로 입교했다고. 정 교도는 “결혼 전에 서로 종교가 달라 걱정했었는데, 남편이 대산종사님께 선물 받은 교전을 탐독하더니 지금은 나보다 더 공부 뿌리가 깊고 가족법회도 곧잘 주관해 아이들에게 재밌는 법담도 들려준다”고 남편 자랑에 침이 마른다. 78년 잠실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시작하자마자 박은국 교무(당시 원남교당)와 어머니가 찾아와 “출장법회를 보자”고 했고, 2주일에 한 번씩 법회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잠실교당의 시작이다.
잠실교당 초대 봉공회장 시절 그녀는 “교당불사기금을 마련하느라 남대문 시장에 가 티셔츠를 사다 팔기도 했다”면서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교구 봉공회 임원으로 일하면서 ‘은혜의 전화‘로 상담 봉사를 하던 그녀는 주정일 원광놀이치료센타 회장으로부터 상담공부를 제대로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후 93년 마닐라, 94년 동경, 95년 북경 등 국제회의에 연이어 참석 하는 등 여성회 창립멤버로도 주도적 활동을 했다. 뿐만 아니라 뒤늦게 공부까지 시작한 정 교도는 현재 명지대아동심리치료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10여년 째 상담공부를 해오고 있다. 이밖에 그림실력도 수준급이어서 ‘일원전’ 등 몇차례 전시회에 출품도 했다고. 정교도는 “잠실교당 여성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한울안열린학교를 시작했다”면서 “특히, 아동상담은 가족교화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리가 이끄는 길로 오롯하게 살아온 정교도는 “할 일이 많아 피곤하기도 하지만 매순간 너무너무 즐겁다”며 샘솟는 열정을 드러내기도.
서원정 기자 swon@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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