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성지,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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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성지,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
  • 한울안신문
  • 승인 2005.11.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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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교수의 세상읽기



우리 교단이 1백년도 채 안된 상황에서 지금처럼 크게 성장하게 된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특히 같은 민족종교로서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천도교나 증산교와 비교해 보아도 우리 원불교의 뿌리 내림은 경이롭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발전을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일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출가재가 교도들의 일심합력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건적 차원에서 볼 때는 단연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의 만남이 아닐까. 만약 두 분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우리 교단이 지금과 같은 성장을 과연 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두 분의 만남은 원불교가 한 종교로서 모습을 갖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 두 분이 과연 어떻게 만나셨을까? 그것은 우연한 만남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적인 만남이었을까? 이에 대해 우리 교도들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정산종사 법어 기연편 7절을 보면 “정산종사 구도 일념으로 전라도에 방황하실 제, 정읍 화해리 김해운(金海運)이 뵈옵고 크게 기쁜 마음을 내어 집에 청하여 알뜰히 공경하며 시봉하더니, 드디어 그의 집에서 대종사와 만나시니라...” 라는 설명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북 성주가 고향인 정산종사님이 어떤 연유로 전북 정읍에까지 가셔서 기거하고 계셨을까? 그리고 화해리의 김해운(金海運) 댁에는 어떤 인연으로 머무시게 되었을까? 해운(海運)이라면 ‘바다를 운전 한다’는 의미인데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거창한 이름을 갖고 계셨을까? 그 이름은 혹시 대종사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아닐까? 또 대종사님은 무슨 이유로 정읍 화해리까지 친히 움직이셔서 정산종사님을 만나셨을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이 있는 곳이 바로 정읍시 북면 화해리에 소재한 제우성지(際遇聖地)이다.
필자는 며칠 전 광주에 학회가 있어서 지나는 길에 일부러 이곳을 찾아가 보았다. 이렇게 많은 의문을 지닌 곳이기에 잘 가꾸어진 성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대는 입구에서부터 깨져 버렸다. 태인에서 정읍시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에 세워진 안내판은 이미 낡아 녹이 쓸어 흉물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또 안내판을 따라 우회전을 했더니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호남고속도로의 긴 가교였는데 이 가교가 이내 시야를 가려버려 과연 성지가 이런 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결국 그 곳에 사는 한 촌로를 만나 원불교 성지가 어디냐고 물어 보게 되었는데 화해교당 위치만을 가르쳐 주는 것만을 보아 제우성지가 어떤 곳인지를 잘 모르는 듯 했다. 화해교당을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당산나무 옆에 세워진 큰 비석을 보고서야 이곳이 성지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서 차를 몰고서 찾아간 성지는 나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는 그야말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우성지는 우리 교단에 있어서 중요한 콘텐츠이다. 이런 콘텐츠가 좋으면 좋을수록, 그리고 많으면 많을수록 교화가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런 콘텐츠를 제대로 가꾸지 않고 교화를 한다는 것은 좋지 않은 물건을 만들고서 잘 팔리는 것을 기대하는 심리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교화에 앞서서 다양한 종교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제우성지와 같은 원불교의 중요한 콘텐츠 복원 사업을 교단의 일로서만 방치할 것인가. 교단이 할 수 없으면 교도라도 나서야 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가 아닌가. 그렇다고 뜻 있는 교도 몇 사람이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전교도가 기왓장 하나라도 마련한다는 자세로 임하면 임할수록 복원사업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고 본다. 이런 캠페인이 전국 교당에서 불같이 일어났으면 한다. 이것이 일백주년을 준비하는 우리 교도들의 참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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