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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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 이현성
  • 한울안신문
  • 승인 2005.12.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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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칼럼


삶이란 인연들과의 만남 속에서 연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 한 해를 조용히 마무리할 수 있는 지혜를 바라는 마음에서 법문집을 펼쳐들었다가 우연히 대산종사가 밝힌 가장 무서워해야 할 세 가지에 대한 법문 가운데 둘째 법문,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원수를 풀지 못하고 맺어만 가는 일이요” 라는 법문을 대하자 내 가슴 한 곳이 많이 서늘해져 오는 것이었다.
올 한 해 내게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했는가? 은혜를 주고받았던 인연을 선연이라고 하고, 고통을 주고받았던 인연을 악연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 삶에 다가왔던 원수들을 선연으로 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올 한 해 살아온 모습을 돌아보자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선연이라고 생각하는 인연들은 따스하게 대하게 되고, 악연이라고 느껴지는 인연들은 미워하게 된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사람은 미워하고, 우리의 삶 가득히 희망과 기쁨을 남기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나를 키워주고 내게 힘을 주었던 존재는 오히려 내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통을 받는 그 순간 정말 참을 수 없어서 괴로워하게 되지만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 내가 기울이게 되는 노력으로 나는 진리의 엄청난 은혜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산종사는 첫째, 상 없는 공부 즉 허공 같은 심경을 가질 것이며 둘째는 어디에도 끌리지 않는 원만한 심법을 가질 것이며, 셋째는 희로애락 원근친소에 편착함이 없이 지공무사한 마음을 사용하면 곧 대도를 성취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와 원수 맺었던 그 인연들도 그 근원을 따라가면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상으로 인한 반작용이 아닌가. 내가 겪은 고통의 근원은 허공 같은 마음으로 생활하지 못한 내 탓이고, 원만한 심법으로 작용하지 못한 내 탓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즈음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법신불 전에 두 손 모으게 된다.
법신불이시여! 제 모든 고통의 근원은 부족했던 제 탓이옵나이다. 내게 큰 힘을 주셨던 그 인연들에게 다시 한번 허공 같은 마음으로 다가가 보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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