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 모시고 교단발전 초석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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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종사 모시고 교단발전 초석다진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10.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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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래산 김경원 대호법 열반



서울교구 교의회의장과 서울청운회 초대회장·중앙교의회의장 등을 역임하며 교단 발전에 헌신해 온 래산 김경원 대호법이 지난 9월 22일 세수 92세를 일기로 거연히 열반에 들었다. 래산 김경원 대호법은 1920년 3월 16일, 경남 진주에서 부친 김신석 선생과 모친 남일심행 여사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원기 49년 23세 되시던 해 혁타원 송예성 종사와 결혼해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으며, 혁타원 종사의 연원으로 종로교당에서 입교해 새 회상 원불교와 첫 인연을 맺었다.


래산 김경원 대호법은 대산 종사의 각별한 호념 속에 중앙청년회장·서울청운회 초대회장(2기)·서울교구 교의회의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셨으며, 중앙교의회부의장(중앙원덕회 초대회장)과 중앙교의회의장(2기) 등 도합 12년간 중앙교의회 의장단으로 봉직하며 교단의 대소사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원기82년 총회에서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앙교의회 명예의장에 선출되셨으며, 아우인 김혜성 종사와 함께 원로회의 의원직을 역임하며 교단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뿐만아니라 래산 김경원 대호법께서는 우리나라 산업화시대를 주도한 대표적인 경제인이기도 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을 졸업한 뒤 학도병으로 끌려가 생사를 넘나드는 큰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조선화재보험주식회사 대표를 역임하셨던 부친 김신석 선생의 뒤를 이어 한국은행 총재 비서실장·외환은행 감사 등 금융계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대한민국 금융발전의 초석을 다졌으며, 동림산업 사장과 제일제당 고문으로 활동을 하며 우리나라 산업발전에도 지대한 공적을 끼쳤다.


경산 종법사는 “래산 대호법께서는 대산 종사의 각별한 배려와 사랑 속에서 대종사님을 비롯한 스승님에 대한 신성과 일원회상 발전의 염원으로 일관해 오신 어른”이라며 “불연심중귀원가 지성보은법훈탑 무자경전억만수 원통무애득작불(佛緣深重歸圓家 至誠報恩法勳塔 無字經典億萬守 圓通無ꠙ ꠓ得作佛)”이란 게로 영로을 위로했다. 이를 해석하면 “깊은 불연으로 원불교에 귀의해 지성보은으로 법훈탑을 쌓았네, 글자없는 경전을 억만번 지켜서 원통무애로 부처 이루소서”라는 뜻이다.


래산 김경원 대호법은 원기 62년 법호를 수증했고, 원기 67년 법강항마위에 승급했으며, 원기 82년 대호법의 법훈을 서훈했다. 공부성적은 정식법강항마위이며, 사업성적은 정특등 5호, 원성적은 정특등으로 초종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원불교 영모묘원 법훈묘역이다. 유족으로는 3남 1녀의 자녀와 손자녀들이 있으며, 장남 내외는 강남교당 교도로 활동하고 있고 3남 김명려 교무는 전무출신으로 삼정원에 근무하고 있다. 종재는 오는 11월9일 서울회관 대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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