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의세 기틀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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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의세 기틀 다져’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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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산 김인용 원정사 열반



아산 김인용 원정사는 1922년 9월 7일, 전북 정읍시 북면 화해리에서 부친 종산 김도일 정사와 모친 연타원 천고성화 교정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원기23년 부친의 연원으로 화해 교당에서 입교, 원기25년 도산 이동안 대봉도의 추천과 진산 김서룡 정사의 보증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원기34년 서원승인 받았다.


아산 원정사는 출가 지원한 원기25년부터 총부 산업부원, 보화당 부원, 원평지부 이과주무로 활동을 했으나 서원 승인된 원기 34년 보화당 외무가 첫 근무 시작으로 원기37년 삼창공사 외무, 원기39년 익산보화원 부원장 겸 총무, 원기40년 원광대학교 건설과장, 경리과장, 서무과장, 사무국장, 교무를 역임했으며, 원기71년 교정원 제2부원장 겸직으로 봉직했다. 원기46년‘아산(亞山)’이란 법호를 받고, 원기67년『정식법강항마위』, 원기73년‘대봉도’, 원기85년『정식출가위』에 승급했으며, 원기85년‘종사’법훈을 수훈했다.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인 숭산 박광전 종사의 유촉으로 원광대 운영에 참여한 이후 정부 교육정책의 변화와 빈약한 재정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원광대를 종합대학으로 키웠고, 의과대학과 원광대학병원을 설립해 제생의세(濟生醫世) 이념의 기틀을 다졌다. 원광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문교부장관으로부터 국민 교육헌장이념구현공로 포상을 받기도 했다.


철저한 공심과 근검절약의 정신으로 오로지 원광대의 발전이 곧 교단의 발전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오신 아산 원정사는 원기77년에 퇴임하여 수양 적공의 힘을 쌓다가 노환으로 6월 21일 오후 3시 52분 원요양병원에서 열반에 드니 세수는 94세, 법랍은 74년 11개월,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 5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원불교 교단장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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