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실현의 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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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실현의 선봉’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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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산 김현 교무 열반



과산 김현 정사는 1945년 10월15일 전북 고창군 대산면 성남리에서 부친 하산 김재선(재복) 교
정과 모친 소타원 심정도행(연례) 정사의 5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원기48년 두타원 전봉선 교도의 연원으로 광주교당에서 입교하고 원불교와 인연을 맺었으며, 원기50년 성타원 이성신 원정사의 추천과 보증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원기57년 서원승인 받았다.


원기57년 종교문제연구소 주사를 시작으로, 원기58년 재무부 주사, 원기60년 재무부 산업과 주임겸 영산성지사업회 간사, 원기62년 재무부 경리과장, 원기65년 영모원 총무, 원기66년 영산출장소사무장 겸 영모원 총무, 원기76년 영산사무소 부소장, 원기79년 교정원 제2부원장 겸 교육부장, 영등포보화당한의원 사장 겸 부산 보화당한의원 회장, 원기82년 정산종사탄백기념사업회 사무총장겸 교정원 제3부원장, 원기84년 법무실 법감 겸직, 원기86년 원광대교당 교감교무 겸 정산종사탄생백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원기92년 광주전남교구 교구장 겸 광주지구장, 광주교당 교감교무 겸 동구청소년수련관 관장, 원기95년 중앙교구 교구장 겸 사회복지법인중도원 대표이사, 이리교당 교감교무으로 봉직했다.


정사는 원기74년, “과산(果山)”이란 법호를 수증, 원기76년‘정식법강항마위’에 승급했으며, 원
기85년 정수위단원으로 피선, 2선을 역임했다.


사회적으로는 원불교를 대표하는 민주화 운동가이자 시민활동가로 미문화원방화사건에 연류되어 100여 일간 옥고를 치루기도 했으며, 광주 민중항쟁과 6. 10 민주항쟁 시절에는 교단을 대표해서 종교, 시민사회단체들과 적극 교류하여 민주화의 선봉에 섰으며, 탈핵 환경운동으로 영광 핵폐기장 유치를 막아내기도 했다.


과산 정사는 원기99년 퇴임 이후에도 육신의 불편도 잊고 한결같은 서원과 공부심으로 원불교 100년기념성업회 퇴임 후 자원봉사를 하면서 열반의 순간까지 수양과 적공에 힘쓰다가 병환으로 6월20일 새벽 2시 59분에 자택에서 열반에 드니 세수는 71세, 법랍은 50년 1개월, 공부성적 정식 법강항마위, 사업성적 정특등 4호, 원성적 준특등으로 교당연합장에 해당된다.


고인의 뜻에 따라 원광대 의과대학에 시신이 기증되었으며, 장남 김영빈 교무(미주선학대학원 대학교)가 전무출신하여 부친의 뜻을 이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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