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이겨내요, 코로나19] 겨울 창틈 사이로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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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겨내요, 코로나19] 겨울 창틈 사이로 봄이 왔다.
  • 우형옥 기자
  • 승인 2020.03.25 12:40
  • 호수 11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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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봉공회・대구경북교구의 소방공무원 밥차 지원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소방공무원들.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소방공무원들.

[기획·정리=우형옥]갑작스러운 집단감염으로 폭풍 같은 한 달을 보낸 대구 시내에는 하얀 구급차가 매일 바쁘게 움직인다. 전국의 소방공무원이 대구로 달려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사회복지법인 원봉공회(원불교봉공회)의 ‘사랑해 빨간밥차’와 노란 카니발이 보인다.

소방대원들이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어 도시락으로 겨우 끼니를 때운다는 소식을 듣자, 원봉공회가 KT희망나눔재단의 후원을 받아 나선 것이다. 지난 3월 6일에서 15일까지 따뜻한 집밥으로 소방공무원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원불교 사람들, 그들은 대구에 봄을 부르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고 일어나면 힘이 나요 

KT희망나눔재단의 요청을 받은 사회복지법인 원봉공회는 현지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없이 3월 6일 ‘빨간 밥차’와 함께 대구로 떠났다. 조리장, 조리원, 보조자 등 밥을 함께 만들 자원봉사자를 구하지 못한 채로 내려갔기에 대구경북교구에 도움을 요청했다. 교구가 이전에 이런 일을 겪어 보았을 리도 만무하고, 갑자기 3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역 내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나선 대구경북교구 재가출가 교도들의 협력은 빛을 발했다. 이들은 함께 식단을 짜고 역할을 분담했다. 감염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 배식 현장에서는 원봉공회 강명권·차영기 교무, 세계봉공재단 이혜진 교무와 대구경북교구 교무 등 최소 인원만이 ‘빨간 밥차’에서 밥과 국을 짓고 배식했다. 반찬은 가까운 대구교당에서 교구 내 재가출가 교도들이 모여 풍성하게 요리해 전달했다. 원창 사업기관 중 하나인 (주)웰푸드에서 매일 식자재를 조달하는 등 점차 시스템을 잡아갔다.

이 정성스러운 봉공에 열흘 동안 총 2580여 명의 소방공무원이 빨간 밥차를 통해 든든히 배를 채웠다. 하루에 20명에서 30명의 재가출가 교도들이 교당에 나와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내고, 반찬을 만들었다. 대구경북교구 김삼원 봉공회장은 반찬을 만들기 위해 아들 몰래 교당에 나왔다며 웃음을 보였다.

“사실 아들이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걱정할까 봐 아들이 출근하면 8시 40분쯤 몰래 나와 봉사를 하고 들어갔죠. 어느 날은 집에 들어가 너무 힘들어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아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산에 다녀와서 힘들다고 했죠. ‘내 안전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잖아요. 다들 나이도 있으시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 일을 하는 게 정말 힘들고 대단한 일이에요. 이상하게 저도 아무리 힘들어도 자고 일어나면 힘이 나더라고요. 아마 이것이 신앙의 힘인가 싶어요. 우리도 봉공을 하지만 소방대원들도 봉공을 하고 있죠.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해드리는 음식 맛있게 드시고 안전하게 봉공하시며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하는 에너지
“코로나19가 국가적으로 심해지고 나서부터는 밤 11시까지 일을 하고 주말이 없어요.”

대구경북의 상황을 돕기 위해 대구로 모인 전국의 소방대원들은 쉬는 날도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확진자 이송을 위해 힘쓰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뛰어도 숨이 차는데 방호복을 입고 종일 뛰어다니는 소방 대원들의 수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강원도 횡성소방서우천119안전센터의 구복교 소방대원은 “처음에 내려올 때는 저도 ‘감염이 될 가능성이 높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려와서 보니 환자와 직접 접촉이 없을 뿐더러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고, 차량 또한 안팎으로몇 차례 소독이 이뤄져 감염 위험성이 낮습니다.”라며 정부를 믿고 지침을 잘 준수한다면 이 사태가 금방 끝날 것 같다고 오히려 봉공회원들을 안심시켰다. 

대구에 모인 소방대원 숙소나 식사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보고 있는 대구소방안전본부의 손태영 예산회계 팀장 또한 정신이 없다. 매일 지역별로 다른 대원들이 모이니,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식사 인원 파악도 힘이 든다. 급식자원봉사자가 구해지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 원불교의 '빨간 밥차'는 너무도 고마운 손길이었다. 

“사실 ‘밥’이 정말 중요해요. 이러한 식사 지원은 저희에게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원불교에서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식사를 만들어 주시니 대원들이 허기짐을 해결하고 즐겁게 일하는 것 같아요.” 

소방대원들은 원불교를 잘 몰랐지만 따뜻한 마음을 얻고 간다며 감동을 전했다. 그리고 함께 하는 서로의 에너지가 똘똘 뭉쳐 얼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염원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손태영 예산회계팀장
대구소방안전본부 손태영 예산회계팀장

사은을 느끼며, 위기를 기회로
“원불교가 잘 알려진 전라도와 달리 경상도에서는 원불교의 인지도가 낮아 대사회 봉공을 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원불교 빨간 밥차를 통해 소방공무원들에게 식사 제공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또 은혜심기운동본부, 교정원, 전국의 다른 교구와 교당, 교도님들께서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보내주셨습니다. 앞으로 이 은혜의 씨앗을 대구경북 지역사회에 고루 퍼뜨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정도 대구경북 교구장과 손유원 사무국장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대구경북교구는 불안과 두려움에 힘들어하는 교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영상설교대회, <정전> 음강대회 등 법회를 대신하는 ‘교·신 Think’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세상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기 위한 연대와 배려들이 펼쳐지고 있다. 겨울의 냉기가 아직 남아있지만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수줍게 맺혀있는 꽃봉오리가 봄을 알리고 있다. 힘들어도 낙담하지 않고 사회와 함께하는 원불교인들이 있어 봄은 다시 찾아왔다. 코로나19, 우리는 함께 이겨낼 수 있다. 

빨간밥차에서 반찬을 만들고 있는 교무들
정문호 소방청장(오른쪽)이 원봉공회 강명권 교무(왼쪽)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정문호 소방청장(오른쪽)이 원봉공회 강명권 교무(왼쪽)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3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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