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교당'에 가면 은혜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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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교당'에 가면 은혜마을이 있다
  • 강법진 편집장
  • 승인 2019.12.05 00:15
  • 호수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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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교화지형을 그리다/ 전곡교당.은혜마을

 

은혜마을 직원들

 

분단된 한반도에서 교화 거점을 삼는다면 북으로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까.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군, 그곳에서 다시 드넓은 들판을 지나 한탄강이 흐르는 시골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아늑하게 자리 잡은 원불교 전곡교당, 사회복지법인 원불교창필재단 은혜마을과 만난다.

‘맑고 밝고 훈훈하게’라는 원훈에 바탕해 2004년 3월에 개원한 은혜마을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은길 184-40에 소재해 있다. 비록 읍내와는 떨어져 있지만 ‘어르신을 내 부모처럼 모시는 마음’에 연천군에서는 노인전문요양시설 1호로 불릴 만큼 신뢰도가 높다. 그 명성은 정원 95명을 다 채우고도 매년 대기자가 줄을 설 정도다.

 
 

더없이 좋은 날, 은혜장터

은혜장터에서 먹거리를 즐기고 계신 어르신과 사연명 교무
 

은혜마을을 찾은 날은 은혜장터가 열린 날이었다. 오후 1시반 은혜마을 앞마당에 옷가지며 생활용품, 푸짐한 먹거리 부스들이 펼쳐졌다. 평소 모아뒀던 지폐 몇 장 호주머니에 넣고 휠체어에 의지해 장터로 나온 어르신들. 알록달록한 조끼를 집어 든 어르신은 마음에 쏙 들었는지 연신 옷을 쓰다듬는다. 날도 쌀쌀해졌으니 한 벌 살 요량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갖가지 먹거리 부스가 펼쳐져 어르신들이 이미 줄지어 있는 상태. 닭꼬치, 순대, 떡볶이, 어묵 등 골고루 담아 테이블에 앉으니 잔치상이 따로 없다. 원내 어르신을 대상으로 소박하게 꾸민 은혜장터지만 한 해 두 차례씩 필요한 옷가지며, 생활용품도 사고, 먹거리도 즐기니 어르신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날이다.

무자력한 부모를 내 부모와 같이 봉양하는 것만큼 큰 작복(作福)이 또 있을까. 소태산 대종사도 무자력자 보호를 부모은(父母恩)의 한 조목으로 밝힐 만큼 삼세를 놓고 보면 내 부모 아님이 없을 터. 모든 어르신을 내 부모와 같이 모시다 보니 하루하루가 선물 같다고.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은혜마을은 연천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인요양시설이다. 현재 95명의 어르신이 생활시설에 입소해 56명의 요양보호사가 돌보고 있고, 주간보호센터 ‘은빛사랑채’에는 일 년 365일 어르신들이 찾아와 놀이도 즐기고, 입담도 나누며 심신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이 외에도 은혜마을에는 재가복지사업으로 노인돌보미서비스, 노인단기가사서비스, 가사간병 방문 지원사업, 응급벨, 장애바우처 등 7개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직원 107명이 어르신 700명을 보호하고 있으니 노인인구가 자꾸 늘어가는 시대에 이쯤 되면 지역 내 효자 시설이라 할 수 있겠다.

은혜마을은 사연명 교무가 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설 리모델링과 야외 편의시설을 갖춰 이제는 안팎으로 탄탄한 노인전문요양시설로 거듭났다. 특히 사 교무는 어르신들에게는 쾌적한 시설환경을 제공하고, 시설을 찾아오는 가족과 방문객들에게는 잠시나마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휴게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 왔다.

 
 

이용자들의 쉼터, 산책로 조성

전곡교당은혜마을 앞 코스모스 꽃밭

 

사 교무가 10년 전 이곳에 부임했을 때는 개척을 넘어 이용자 중심의 노인전문요양시설로 변모해야 하는 시기였다. 자신이 처한 일터가 곧 보은의 일터라는 신념으로 앞뒤 돌아보지 않고 지역사회에 은혜마을과 전곡교당을 확실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도 많았다.

그 결과 6인1실을 4인1실로 변경하고, 천막으로 된 중정 공간을 ‘돔’ 형태로 바꾸고, 컨테이너 정리, 식당 리모델링, 에어컨 설치 등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제일 공들인 곳은 다름 아닌 중정 정원과 산책로다.

사 교무는 “자녀들이 부모님을 만나러 오면 함께 산책하거나 쉬어갈 공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마음먹었죠. 30분, 1시간, 1시간반 코스별로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꼭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10년간 교화를 돕고 있는 ‘5사단’(교무 김서경) 대대장을 불러 산책로를 만들 터이니 도와달라고 부탁했죠”라며 지금 생각해도 대담했던 당시의 절박함을 표현했다. 덕분에 군종병과 장병들이 돌담을 쌓아 지금의 산책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끝까지 구하라, 얻어지나니라’는 스승님 말씀처럼 시간은 비록 오래 걸렸지만, 그 용단이 지금의 은혜마을의 상징이라 불리는 멋진 정원과 산책로가 됐다. 물론 처음부터 정원은 아니었다. 산책로를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텃밭에 작물도 키워보고 꽃도 심어보았다. 그 결과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 꽃밭이 제격임을 알아 현재는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정원이자 멋진 산책로, 쉼터가 됐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두 번의 경기도 도지사상, 국회의원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됐다.

 

은혜마을 속 원불교 아닌 '원불교 속 은혜마을' 꿈꾸며

지난 10년 쉴 새 없이 달려온 길, 사 교무에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꿈이 생겼다. 번듯한 전곡교당을 신축하는 일이다. 원불교가 이곳에 터를 잡은 원기83년(1998) 교단 분위기는 면면촌촌에 교당을 세워 일원대도를 선양하자는 바람이 불었다. 그 뜻을 이어 최정풍 교무가 같은 해 10월 18일 이곳에 봉불식을 올리고, 농촌지역 노인인구 증가 추세를 감안해 토탈교화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원기89년(2004년) 은혜마을을 설립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 외에도 청소년교화와 지역교화를 위해 연천군으로부터 청소년상담센터를 위탁받아 원기102년까지 운영했다. 실적도 우수해 2016년에는 사 교무가 여성가족부장관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모든 활동이 교화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사 교무는 “지금까지는 기관 운영을 통해 원불교를 알렸다면, 이제는 원불교 전곡교당이 모든 시설에 있어 바탕이 되게 해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다. 교단 신축 5년 계획안은 이미 수립돼 있다. 이제부터 한 발 한 발 내딛는 중이다”면서 “현재는 매주 월요일 오후 6시30분에 교당 법회를 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설을 오가는 누구나 법회와 명상과 쉼을 얻을 수 있는 반듯한 교당을 신축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한다. 그들을 위한 주차장은 이미 다져놓은 상태다.

사 교무는 “지금껏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이뤘다. 지역사회 신뢰도 쌓았고, 시설도 안정화시켰다. 이제 나의 염원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교화할 것인가 하는 일념뿐이다. 교화가 내 삶의 목적이고 이유다”라며 절대 뒷걸음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교화와 교육·자선을 통해 교법을 실천하는 곳, 경기도 최북단에 전곡교당·은혜마을이 ‘원불교’의 기치를 드높이고 있었다.

 
 
 
 
 
 
전곡교당.은혜마을
사연명 교무
031.835.8308-9

 

12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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