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 고문기 원정사 천도재] 추모담_보고싶은 감산 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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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 고문기 원정사 천도재] 추모담_보고싶은 감산 아버지께
  • 고영심 교도
  • 승인 2020.03.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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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딸 고영심 강남교당 교도
감산 고문기 원정사의 7.7천도재에 참석한 딸 고영심 교도와 사위, 어머니(앞줄 왼쪽부터)

아빠!

지난해 12월 25일, 병원에 입원하시던 바로 전날까지도 계속 회사에 출근하셨던 아버지가, 그렇게도 바쁘신 듯 급히 먼길 떠나시리라고는 아무도 미처 예상 못했었는데.... 여전히 새록새록 떠오르는 아버지의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오늘도 무척 그립습니다.

입원해 계시던 어느 날 새벽, 얼굴과 몸에 수없이 멍이 든 채 침대에서 병실 바닥으로 내려오셨을 만큼, 말씀은 못하셔도 그렇게도 집에 가고 싶어 하셨는데, ‘조금만요, 조금만 나아지면요~’ 하면서 더이상 집으로 모시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고 마음이 아픕니다.

매양 기운이 없어 담요를 덮은 채 거실 의자에 눕듯이 기대어 계시다가도, 들어서는 저에게 “원타원 왔냐~?” 하시며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우시던 아버지는 안 계시고, 이제는 거실에 아빠의 보라색 빈 의자만 덩그러니 남아있답니다.

며칠 전엔 아빠가 자랑스러워하고 많이 의지하셨던 사위, 민서방 생일이었습니다. 생일마다 모든 자녀손들에게 용돈 봉투를 주시면서, 각자에게 꼭 적절한 자애로운 말씀으로 겉면에 길게 써주시던 편지들도, 그리고 설날, 교전의 법문 말씀들을 인용해서 써주시던 복돈 봉투들도 이제 다시는 받을 길이 없게 되었네요.

퇴근하실 때마다, "애 많이 쓰셨네요~." 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에게, "도타원님, 오늘도 행복하게 잘 지내셨오?" 하며 다정하게 손잡고 들어오시던, 아버지와 엄마의 서로 극진히 챙기시는 행복한 모습도 이젠 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감산 아버님!

작년 이맘때쯤 제게 "원타원아, 나는 요즈음, 내게 원망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혹여 있는지, 주위 인연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고 있는 중이다" 하시며, "혹시라도 남아있으면 빚을 갚고 풀고 가야 하는데 말이야...." 하셨었지요.

또 마지막 입원하시기 얼마 전, 기사를 시켜서 아버지의 옷가지와 모자, 머플러 등을 다 정리하여 주위에 나눠주고 옷방을 정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흔적들이, 예견하신 듯 마지막 삶을 끝까지 마무리하시면서, 생사해탈 하시듯 자신의 천도도 스스로 하시고 떠나시려는 열반 준비였던 것을, 미생인 저는 바보처럼 이제 아버지가 멀리 떠나신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 저희를, 큰 소리 한번 없이 오직 자애로만 키워주신 사랑하는 아빠와의 이별은 한없이 슬프지만, 평화롭고 청정한 그마음 그대로 편하게 쉬시다가, 상생의 선연따라 다시 오실 것을 굳게 믿사오니 이제 저는 더이상 애통해하지 않습니다.

유언조차 하실 수 없을 만큼 목소리가 안 나오고, 글씨로 소통하던 것마저 기운을 놓으시고 급히 떠나신 것이 마음 아프지만, 아버지께서 평소 저희들에게 자상하게 구구절절이 하시던 말씀들이 다 살아가는 표준으로 삼을 법문 말씀이기에, 감산 아버지의 자식답게, 우애를 지키며 항상 상대편을 배려하고 부족한 듯, 바르게 살겠습니다.

과할 만큼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이었던 아버지가 혹시라도 마음이 쓰일 부분이 엄마임을 저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다 채울 수는 없겠지만, 아주 조금씩이나마 이별의 상처를 회복하고 계신 엄마가, 혼자여서 슬프고 외롭지 않도록 저희 삼남매가, 특히 엄마가 많이 의지하시는 이 딸래미가, 더 많이 신경써서 보살펴 드릴 터이니, 마지막 한 가지 남은 착심 턱 내려놓으시고 훌훌 떠나시게요.

요즘은 엄마에게 가서 일주일에 한번씩 아빠의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아빠가 쓰시던 비누곽 속에 마치 칼날같이 얇게 닳아진 비누조각들, 마지막까지 쓰려고 뒤집어 놓은 로션병, 병원에서 가져온 아빠가 마지막에 신으셨던 목 늘어난 양말 등, 모든게 아빠의 근검절약으로 절제하신 삶을 그대로 보여주네요.

그렇게 자신에게는 매사를 아끼시면서, 문병 오신 교무님들 행여 그냥 보낼까 봐 안 나오는 목소리로 "식사 대접, 식사 대접~" 하시던 아버지....

회사의 사훈, ’우리 모두 한가족‘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전체 직원 수에 가족 수 넷을 곱하면, 내가 이만큼의 식구들 생활을 책임진다 생각하면 이렇게 사업하는 보람이 크구나." 하시며 즐거워하셨던 아버지....

아버지가 멀리 떠나버리신 지금에야, 가까운 친척들부터 교단과 사회, 많은 곳에까지 수많은 공덕을 사없는 마음으로 베푸셨음을, 인과를 확실히 아시고 매양 적공하는 삶을 사셨음을, 아버지가, 감산 고문기 종사님이~ 정말 고귀한 성자의 삶을 사셨음을 저는 바보같이 이제야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한 회사는 오빠가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으며, 모두 아버지가 널리 쌓으신 공덕들이 헛되지 않도록 모든 일에 사은께서 가호하시기를 염원하고 있으니, 아버지는 지치신 이 생의 삶, 잠시 편히 쉬셨다가, 상생의 기운으로 선연되어 오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항상 변함없이 부처같이 여여하셨던 감산 아버지,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거룩하신 삶을, 법호 '거울 감(鑑)' 감산처럼 거울 삼아,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가족으로서 이생의 이 인연, 영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원불교로 선연따라 빨리 돌아오셔서 성불제중의 원대한 서원 이루시기를 오늘도 기원올립니다.

아버지! 덕분에 많이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딸 영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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