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 고문기 원정사 천도재] 추모담_할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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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 고문기 원정사 천도재] 추모담_할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 고태원
  • 승인 2020.03.26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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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고태원
손자 고태원(정중앙)은 감산 원정사의 큰아들의 장남이다. 종재식에서 손주들이 할아버지 영정에 분향 헌배하는 모습.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손자 태원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매년 빠짐없이 저희 손자 손녀들 각각에게 두 번의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하나는 1월 1일 새해를 맞으며 손자 손녀 각각을 위한 덕담이 담긴 편지를, 하나는 각자의 생일에 할아버지의 사랑과 축하를 담은 편지를 주셨지요. 지금도 제 책상에는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필체가 담긴 봉투들이 서랍 한켠에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도 많은 편지를 받았음에도 할아버지께 손자로서 변변찮은 편지 하나 써드리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와 너무나도 죄송스럽습니다. 3월 18일 6재를 맞아 손자 손녀들을 대표해 할아버지께 이렇게나마 편지를 올립니다.

할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합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주저 없이 할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숙제로 존경하는 인물을 물을 때 자신의 부모님을 제일 먼저 적어오는 여느 친구들과는 다르게 저는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께 대한 아버지의 존경심에 영향을 받아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저희에게 아낌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집에서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때, 옹기종기 모여 TV를 볼 때도, 저희 삼 남매를 가르치고 꾸짖으실 때도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언급하며 저희를 교육하셨습니다. 주말에는 항상 할아버지댁에 모여 식사자리를 갖도록 해주셨지요. 자연스레 저희 삼 남매에게 아버지의 그런 진심이 간접적으로 내면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커가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제 존경심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등학생 때 할아버지 댁 탁자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편지들을 보게 되었고 무슨 편지들인지 여쭤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그 편지들은 감산 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의 감사 편지였습니다. 흐릿한 기억으로 한 편지는 제 또래의 남매가 국악을 전공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음을 할아버지께 알리며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편지의 말미에는 ‘저도 나중에 감산님처럼 남을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적혀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또 그것을 제게 보여주며 저 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시던 할아버지가 아직도 눈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또 장례식 때 할아버지 영정사진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눈물 흘리는 많은 조문객들을 보았습니다.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님에도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그분들을 보며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얼마나 많은 분들께 사랑과 은혜를 배푸셨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됐고 그런 할아버지의 손자라는 것이 저는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이런 인생 철학을 몸소 실천하시고 보여주신 덕분에 저희 손자 손녀들도 건강하고 올바른 정신을 갖고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까이서 저희에게 언제나 귀감이 돼주신 할아버지 너무나 존경합니다.

할아버지, 저희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할아버지 손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께서 제 태몽을 꾸셨다고 아버지께 전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제게 사랑과 관심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 편지를 쓰며 그간 할아버지께서 제 생일 혹은 새해에 주셨던 편지와 문자메시지들을 쭉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철없는 어린아이일 때부터, 군대를 제대하고 어엿한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할아버지께는 한없이 귀엽고 소중한 손자로서 사랑받아 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연 제가 할아버지께 부끄러운 손자는 아니었는지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미처 몰랐던 할아버지의 소중한 충고와 교훈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2019년 12월 18일 병원에 입원하시기 일주일 전 제 생일에 할아버지께서 보내 주신 마지막 문자 메시지입니다.

‘오늘 우리 자랑스러운 손자 태원의 25번째 생일이구나. 항상 즐겁고 행복해라. 할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아 누워있다. 즐겁게 오늘 하루 지내고 항상 행복해라 할아버지가.’

일어서실 힘이 없어 거실 소파에서 안방 화장실까지 제 부축을 받고도 세 번이나 멈춰 쉬어 가셔야 했던 건강 상태에서도 손자 생일을 그 누구보다 먼저 기억하시고 축하해주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께 받은 사랑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 벌써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고도 아직도 할아버지의 품속에서 사랑받으며 어리광부리는 손자이고 싶나 봅니다.

병실에 누워계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병세가 악화돼 귀도 더욱 안 들리시고 말씀도 못 하시는 상황에서 손자 태원이 왔다고 귀에 속삭이면 저를 보며 웃으시며, 입모양으로나마 ‘태원이 왔냐?’ 해주시던 게 생각이 납니다. 또 먼저 가보겠다고 하면 제 앞에서 팔운동을 하시며 힘이 난다고 빨리 공부하러 가라고 손짓하시던 게 생각이 납니다. 숨이 다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혹여나 손자 공부에 방해되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던 할아버지를 저는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게 해주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말씀대로 항상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존경받는 일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할머니를 비롯한 저희 가족 모두 화목하게 지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할아버지 손자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이제는 평안한 곳에서 저희 손자 손녀들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 지켜봐 주세요.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 사랑하는 손자 태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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