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일기] 그리고 그날 나는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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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일기] 그리고 그날 나는 그곳에 있었다
  • 원익선 교무
  • 승인 2022.08.2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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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평화일기 17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행사를 마친 사드철폐 전국행동에 모인 5천여 명의 참가자들은 진밭교를 향해 올라왔다. 그들은 독경하며 꿋꿋이 앉아 있는 교무들 위로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단숨에 그 천막을 걷어서 도로 아래로 밀쳐 버렸다. 시민들은 다시 새 천막을 가져와 교무들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천막의 기둥이 땅 아래에 고정되도록 대못을 박는 동안 경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인간방패를 쌓았다. 나는 독경보다도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평화시민들을 향해 덤벼드는 경찰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함성과 고통의 절규가 주위를 에워쌌다.

“교무님들이 다친다”며 안간힘을 쓰는 그들이 만든 작은 공간 속에서 인류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왔다 가신 모든 부처님과 성현들이 바로 눈물 흘리는 이 이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속에는 평화의 성자들인 정산, 주산종사의 자비로운 모습도 보였다. 마침내 거리의 변호사로 알려진 권영국 변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경찰 여러분. 이제 그 천막에 손대지 마십시오. 이 천막은 땅에 고정되었습니다. 당신들의 관할이 아닙니다. 하나의 건물이 형성되었으므로 관할은 성주군청이 됩니다. 철거 여부는 군청 소관입니다. 당신들이 손을 대는 순간 불법이 됩니다” 이후 지금까지 경찰은 이 천막에 대해서 관여하지 못했다.

나는 2017년 4월 26일, 9월 7일 사드가 들어온 그 날들도 소성리에 있었다. 만여 명의 경찰이 소성리 골짜기를 가득 메운 그 양일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시민들과 힘을 합쳐 방패로 무장한 젊은 경찰들에게 대항해 치열하게 싸웠다. 시민들의 눈물이 그들의 옷을 적시고 마을회관 앞 도로를 적셨다. 이후에도 장비가 들어갈 때마다 달려가서 두 눈 벌겋게 밤새 싸우고 학교 수업을 위해 익산으로 차를 몰고 돌아왔다. 그 분함에 눈물이 운전대 앞을 가렸다. 내 생애에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그 트라우마로 소성리와 사드를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난다.

8월 31일이면 진밭평화교당에서 올린 기도는 2천일이 된다. 김선명 교무를 비롯한 이곳을 지킨 수많은 교무와 재가 교도들, 성주와 김천 주민들,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 그들의 애원과 바람이 진밭교 아래의 강물에 실려 강으로 바다로 흘러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천주교,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 이웃종교인도 가세해서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수많은 노동자, 학생, 학자, 주부, 정치인, 언론인이 이곳에서 밤을 새웠다. 나는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원불교야말로 평화와 정의의 종교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하긴 원불교 탄생의 목적이 물질의 노예로부터의 해방이 아닌가.

원불교의 역사, 나아가 한반도 평화의 역사는 소성리 사드철폐 운동의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한반도와 세계의 모순이 집약된 이곳. 불의와 불법과 부조리가 점철된 이곳.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시민의 간절한 기도가 뭉쳐진 이곳. 사드철폐를 외치며 분신하고, 한을 품고 열반한 우리 사랑하는 열사들. 흰 법복을 입고 소성리와 광화문에서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 기도 올린 수백 수천의 사무여한의 후예들이 버젓이 두 눈 뜨고 있는 한 이 교당은 한반도 평화의 중심이 될 것이다.

사드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추진해온 대 중국, 대 러시아의 미사일 방어망(MD) 체제의 일환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작은 마을 소성리에 미국, 중국, 일본, 중동,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지로부터 그 많은 언론사가 왜 다녀갔겠는가. 역사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계는 패권(覇權)의 역사였다. 강자 앞에는 늘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그 패권을 겨룬다. 어릴 때 동네에서, 학교에서, 세상에 나와 국가와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은 새 패권자로 등극하고자 하는 중국을 막기 위해 남쪽의 오키나와로부터 한반도의 휴전선에 이르기까지 인계철선(引繼鐵線, 건드리면 폭발하는 선)을 깔고 있다. 궁금한가. 1945년 미군은 어떻게 들어왔는가. 점령군이 아니었던가. 전쟁은 서구에서 발생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리전이 아니었던가. 일본과 미국이 각각 한반도와 필리핀의 식민지를 교차 승인한 것은 잊어버렸는가.

나는 미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탐욕을 미워할 뿐이다. 투쟁과 전쟁으로 세계를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을 싫어할 뿐이다. 그들이 유럽에서 박해받아 피난 와서 세운 민주적인 국가,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청교도 정신을 또한 좋아한다. 미국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백성을 이웃으로 받아들인다면, 77년 동안의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휴전을 정전으로, 정전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평화의 국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진정 우리의 흠모와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늘어나는 군비, 사라지지 않는 분쟁, 더 많은 민중이 죽어 나가고, 더 많은 전쟁 물자가 생산되고, 그래서 지구는 평화로워졌는가. 생각해 보라. 그렇게도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철통같은 방어를 한다고 우리의 불안이 사라지겠는가. 세상은 변하지 않는 약육강식의 역사임을 현실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비로소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미얀마,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우리 이웃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죽어가는 그 비명을 듣게 되었다. 당신과 너의 제2인칭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그와 그녀의 제3인칭의 죽음, 매스미디어에서 한결같이 들려오는, 테러와 전쟁 때문에 죽어가는, 지역과 이름만 바뀔 뿐인 그 죽음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름 없는 그들의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가. 그들에게 부처님, 하느님, 알라는 과연 이 땅에, 도대체 우리 옆에 계시기나 하는가.

소성리에서 외치듯 무기로는 절대로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쌓여가는 무기는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 있다. 전쟁이 최후의 외교라는 말은 위선이다. 그냥 야만이고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소우주가 전쟁으로 인해 사라져갈 뿐이다. 세계의 모든 종교는 이 전쟁을 막는 데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한반도에, 동아시아에, 세계에 드리운 전운(戰雲)의 그림자를 걷어 들이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원불교가 정의와 평화의 종교라는 말은 이미 누누이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 속에 새겨져 있다. 이 무도(無道)한 세계 질서를 바루기 위해 나온 성현들 또한 정언명법으로써 설하고 있다. 소성리가 전쟁터가 된다면 세계 모든 종교의 성지 또한 전쟁터로 변할 것이다.

나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세울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제 역사가 한 세기에 지나지 않는 한반도 태생의 종교인 원불교인으로서, 인류의 평화와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위해 원불교를 세운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임을 기쁘게 생각한다. 또한, 세계를 한 집안 삼고, 평화를 외친 정산종사의 후손으로서,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고, 온 심신을 헌신하신 주산종사의 후예로서 나는 무한한 감사를 올린다. 스승들의 뜻을 이어 소성리를 평화의 땅으로 되돌리는 일에 내 삶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여 나는 유언한다. 내가 죽기 전에 사드가 이 평화의 땅에서 물러가지 않는다면 나를 화장해서 그 재를 사드가 들어간 마을회관 앞 도로에서 진밭평화교당으로 가는 길 위에 뿌려 달라. 하늘에서 사랑하는 스승들을 모시며, 이 땅과 세계에 영원한 평화가 올 때까지 별이 되어 손잡고 지켜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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