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Z세대의 마음공부] 진급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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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Z세대의 마음공부] 진급 톨스토이
  • 박시형
  • 승인 2022.12.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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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Z세대의 마음공부12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MZ세대가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자식을 두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이유가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꽉 짜인 듯이 보이는 현대 사회, 불확실해 보이는 미래사회에서 결혼, 자식이라는 것이 자칫하면 지금보다 더 나쁜 경제적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다. 다른 트랜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경제적 수단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이 많아서 인생을 어려운 일로 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비관론도 있다고 한다.

며칠 전,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를 소개하는 어느 여교수의 유튜브를 본 일이 있다. 여기서 두 남녀를 대비시키면서, 한 사랑 관계는 파멸로 이르며 또 다른 사랑은 성공으로 이르게 되는 연유를 대비시켰다. ‘이대로 변치 말고 영원히 사랑하자’는 실패의 연유가 되며,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같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삶을 같이 만들어 나가자’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성공적인 삶을 산 조연급 주인공인 ‘레빈’은 지주계급이었으면서도 농부들에 섞여서 풀을 베면서, 몰입을 통해서 예상하지 못한 ‘무아’를 경험하고, 일꾼들과 부단히 대화하며, 이를 통해서 그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추구하게 되는 성공적인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필자는 마치 원불교의 일원상 서원문을 읽는 듯했다. 진급하는 삶 말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서원문이 마치 톨스토이를 통해서 다시 나타나는 듯이 느껴졌다. 언어도단의 입정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내면에 갊아 있는 무아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아마도 톨스토이가 레빈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했던 몰입과 무아일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것(유상)이기도 하지만, 인연에 따라서 끊임없이 일상의 나를 변화를 시키는 주체(무상이라는 일원의 모습) 같은 것이다. 마치 풀베기를 하면서 느꼈던 무아의 경험이 지주계급이던 스스로를 낮추고, 농부와 같이 대화하면서 스스로를 고양(진급)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듯이 원불교의 서원문은 진급을 이야기한다. 농부와 섞여서 풀을 베는 평범하면서도 지겨운 삶을 통해서, 궁극으로 죽음을 사유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은혜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듯이 원불교 서원문은 일상에서 ‘원만한 심신을 수호하고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일원의 체성에 합해가는 삶을 가르친다.

지인 중에 한분이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캘리포니아에 저택에서 살았던 경험을 토로한 적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경치에 반해서 선뜻 사들여서 매일 개를 데리고 정원을 산책하는 꿈같은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그 집을 영화 촬영 장소로도 대여했다고 했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팔고 귀국했다. 첫 몇 개월은 그런 데로 경치에 만족하였으나, 나중에는 아파트 이웃이 더 그리워지더라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 경제적 여건, 주택 이런 것 모두가 어느 것도 우리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젊을 때 생각했던 인생의 만족 요건들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도대체 인간에게 행복이 있기는 할까? 행복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간단히 대답하지 못할 것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힌트를 들어본다. 가정을 이루고 매일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 속에서 도저히 고양이를 키우고, 서핑하러 다니는 삶에서는 맛볼 수 없는 깊고도 그윽한 행복이 있다. 꼭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두지 않는 인연도 있으나,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왜 원불교 김혜심 교무, 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건강을 마다하지 않고 봉사했겠는가? 영생을 위해서,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은 그러한 고단함, 지겨울 것 같은 일상, 그리고 남을 위한 희생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깊고도 그윽한 행복이 빛나고 있다. 행복론에 대한 원불교의 가르침은 비교적 단순 명료하다. 마치 톨스토이의 진보하는 삶과 같이 ‘진급하는’ 삶이야 말고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진급은 심신을 원만하게 보전하고, 사용해서 해독을 은혜로 바꾸는 삶이고, 나아가서 일원의 체성에 합치하는 것이다.

지난 1년, 한울안신문 독자들과 ‘WMZ세대’의 마음공부라는 제목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한국 전쟁에 직접으로 영향을 받으며 자란 세대,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출생했거나 성장한 세대가 가지는 다른 견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꼬인 듯한 어려운 문제들의 핵심에 들어 있을 원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몇 분의 독자라도 읽고 무언가 의견을 주시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조그만 밀알이 다시 WMZ세대에 꽃이 피기를 기원하며, 은혜로운 칼럼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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