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Z세대의 마음공부] ESG 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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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Z세대의 마음공부] ESG 계율
  • 박시형
  • 승인 2022.11.30 08:47
  • 호수 12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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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Z세대의 마음공부 11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

원불교 모임에서 ‘계율’ 특히, 보통급 계문이 토론 대상이었다. 10개 계문 가운데 ‘사육을 말며’와 ‘잡기를 말며’에 대해서 토론했다. 현대 생활을 하면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매우 힘들고 심지어 현대 생활에 맞는지에 대해서도 회의를 표하는 분들이 있었다. 이웃종교, 특히 중동에서 발원된 종교에서도 고기에 대한 계율이 많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는 고기를 취급하는 방법에 대해서 엄격한 경우가 많다. 이슬람에서는 반드시 동물을 잡는 현장을 본 고기만 먹게 되어 있다. 가깝게 지내던 이슬람 교수에게 “참 현명하다. 더운 나라에서 상한 고기를 먹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구나”고 의견을 말하자 “더 깊은 뜻이 있다”며 대답했다. 중동 종교는 ‘술’에 대해서도 매우 단호하다. 더운 나라에서 술은 쥐약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악영향이 크다. 전쟁을 위해서는 단호히 금주를 시켰을 것이라고 본다. 이에 비해서 우리나라 종교는 비교적 계율에 너그러운 경향이 있다. 온화한 기후와 풍류를 즐기는 역사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불교는 ‘연고 없이’란 조건을 달아서 비교적 개인에게 자유를 주고 있다.

계율에는 없지만 ‘마음만이라도 음심을 품으면 눈을 빼라’는 예수의 경고는 엄격을 지나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애꾸로 지내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요즈음 미국 교회를 중심으로 동성애 등에 대해서 눈을 감아주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예전에 만든 계율을 들이대다 보면, 신도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 전체의 심각한 불안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해서 유난히 차별하는 계율을 가진 이슬람 나라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소요사태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원불교는 계율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할까? 원불교 계율은 개인이 지켜야 하는 계율에서부터 인류 전체의 계율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ESG(기후, 지속 가능, 그리고 지배구조)가 중요해지는 미래를 위해서 어떤 지침 같은 것 말이다.

먼저, ‘사육을 말며’를 생각한다. 잘 사는 나라에서 고기를 먹은 양이나 질이 지나치다는 느낌이 있다. 워싱턴 거리를 걸으면, ‘닭고기와 소고기를 먹지 말자’는 캠페인을 잔인한 동물 사육 사진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인류가 과도하게 소비하는 사육에 대한 경고이다. 고기 요리를 잘하는 ‘셰프’가 인기이다. 심지어 계속 무리하게 먹는 사람을 중계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우리도 모르게 고기 맛에 편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편집이 과도한 탄산가스를 배출하는 구조와 맞닿아 있다. 고기를 생산하면서 배출되는 탄산가스가 채식에 비해서 크기 때문이다.

‘잡기를 말며’를 생각한다. 스포츠, 노래, 악기, 컴퓨터 게임이 잡기일까? 시대가 변화해서 잡기 또한 직업이 된 현재는 ‘잡기가 아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잡기는 무엇일까? 최근 개최한 월드컵을 생각한다. 모두가 열광하는 월드컵 현상을 달리 생각하면, 과도하게 축구에 편집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W(전쟁)세대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올림픽에는 아마추어만이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일생을 걸고 매일 공을 차는 사람보다는 취미로, 혹은 건강을 위해서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라는 뜻에서일 것이다. 골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생을 걸고, 온종일 수천개씩 공을 치도록 사람을 몰아가는 것이 합당할 일일까? 한번 시합에서 수억원, 아니 수십억원을 상금으로 주는 게임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스코틀랜드 목동들이 취미로 하던 공놀이가 아닌가? 이런 변화에는 스포츠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스포츠 협회와 관련 업체들의 영향이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인간을 편집하게 하고, 심지어 ESG(특히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모든 것의 프로화가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이 전쟁 대신에 인간의 폭력성을 대체 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서, 우리의 행동을 다시 한번 ESG 관점, 그리고 지속가능한 마음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것이 미래의 가르침인 원불교의 계율을 읽는 눈이 아닌가 한다.

1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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