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일기] 그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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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일기] 그날의 기억
  • 강은도 교무
  • 승인 2022.08.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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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평화일기3

원기102년 3월 11일 제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구공항에 내려 대구역에서 기차로 구미김천역까지 가서 택시를 타고 소성리를 가던 날은 대통령 탄핵 이튿날이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탄핵을 외치고 승리를 거머쥔 것처럼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찾았다.

오후 2시가 되자 어김없이 진밭교까지 오르는 행진이 있었다. 중앙에 김선명 교무님과 나란히 법복을 입고 뒤에는 평화행동 연대자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발걸음을 옮겨 진밭교에 다다르니 경찰이 더 이상 못 올라가게 막고 있었다.

그날도 여전히 경찰과 대치 상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항상 불의를 보면 못 참던 나로서는 조카 같은 그들과 큰소리로 강력하게 길을 열어 달라고 했다가 제주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며 몇 시간을 버텼다. 계속 서 있다 보니 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아팠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앉았다. 동네 어르신들은 플라스틱 목욕의자를 갖다 줬고, 나중에는 먹거리며 돗자리까지 갖다 주셨다. 김 교무님과 함께 앉아 있다가 이리저리 분주했던 상황실 일을 마치고 온 강현욱 교무님과 함께 밤을 지새우기로 했지만, 서리가 내릴 정도의 추운 봄날 바닥에서는 차가운 냉기가 올라왔다. 바닥에 깐 돗자리와 어깨에 걸친 비닐에 의지한 체, 밤새 독경과 주문을 외웠다. 진밭교엔 화장실이 없어서 컴컴한 새벽에 법복자락을 휘날리며 마을회관까지 다녀오면서도 두려움 없이 그동안 체험하지 못한 일을 겪었던 진밭교당에서의 첫날은 잊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틈만 나면 제주에서 성주까지 다녔지만 최근 몇 년간 코로나 19로부터 인해 발걸음을 멈추어 빚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2천일이라는 긴 세월 속에 지금도 쉬지 않고 평화행동으로 연대하는 분들과 소성리 마을 어르신들은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을 어르신들이 제주를 찾아 안덕교당에서 머물 때, 식사를 준비해서 갖다 드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상 소성리를 찾지 못하지만 빚진 마음으로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그리고 한결같이 함께하는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진밭교당의 시작을 함께 했다는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정신·육신·물질로 최선을 다하면서 힘을 보태고 싶다.

“소성리 어르신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제주에서 강은도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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