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일기] 우리는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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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일기] 우리는 나아갑니다
  • 조은학(성주 주민)
  • 승인 2022.08.18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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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평화일기8

얼마 전, 우연한 자리에서 젊은 교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분명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호기심 많은 그 선생님 탓(?)에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게 되었다. “짧은 커트가 잘 어울려요. 언제부터 그 머리를 하셨어요?”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 뒤 “선생님은 마치 독립군 같아요”라는 엄청난 비약으로 급마무리 되었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을 다시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욜로족을 지향하는 그에게 30년 전 전교조 이야기나, 나의 사적 이야기는 마치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장군의 무용담처럼 들렸나 보다. 어쩜 동그랗게 눈을 뜨며 듣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허풍을 늘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한 마지막 한 마디, ‘독립군 같아요’라는 말은 마음에 남아 마법처럼 빛을 내었다.

언젠가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해준 이야기도 그랬다. “사람은 죽어서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지만, 단 한 가지, 평생 세워 닦은 ‘원(願)’은 가지고 갈 수 있대. 그래서 현생의 나보다 좀더 나은 모습으로 후생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해. 결코 후퇴하는 생은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둠에서 환한 길을 찾은 기분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소성리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울 때가 있었다. 복잡미묘한 한국현대사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소성리’와 내가 함께하는 게 현실로 와닿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내가 지금 이 곳에 있게 되었는지, 그 연유가 내내 숙제였다. 단지 불의에 항거하는 개인의 양심으로 정리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런데 남편이 일순간 답을 준 것이다. 또다른 내가 품었던 ‘원’이 나를 이곳, 기지 앞 철조망 앞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 ‘원’을 좀더 세워나가는 중임을, 그리고 후생의 나는 한결 단단해진 ‘원’을 품고 살아갈 것이라는…. 그 생각에 이르니 그동안 가졌던 의문도, 갈등도, 고민도 사라졌다. 난 그저 또다시 그 ‘원’을 잡고 나아가면 될 뿐.

그 길에서 만난 무수한 ‘원’들이 이 곳, 소성리 진밭평화교당에 모인 지 2천일.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구호와, 우리의 함성과, 우리의 ‘추앙’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비록 흔들릴지라도 결코 후퇴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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