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일기] 아주 특별한 인연과 원불교 2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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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일기] 아주 특별한 인연과 원불교 2천일
  • 은영지(대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 승인 2022.08.16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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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평화일기6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만났지만 내게 소중하고 특별한 인연은 소성리의 영웅인 할매들을 만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득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2017년 탄핵된 대통령의 뒤를 이어 당시 국무총리가 사드를 들여오고 뒤를 이은 새 정부가 사드를 추가 배치하면서 소성리에 두세 번 연대하러 가긴 했지만, 바쁜 일상에 쫓겨 열심히 결합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2018년 1월 참교육학부모회 구미지회 행사로 상영된 영화 ‘소성리’에서 머리카락 하얗고 등굽은 깡마른 할매들의 간절함을 보았다. 직접 오셔서 사드와 평화의 필요성을 말하며 내내 눈물 흘리시던 부녀회장의 모습은 또 얼마나 듣는 이의 가슴을 적셨는지….

이후 소성리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머릿수 보태러 집회에 들락거리다가 경찰이 매일 힘으로 밀어붙이던 사드기지 공사를 저지하러 월요일 아침에 진밭교를 지키는 당번을 맡았다. 2018년 5월쯤이었고 당시 민주노총 구미지부 사무국장과 동행했다. 매일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경찰이 소성리를 에워싼 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고 ‘사드 반대’와 ‘불법기지공사 반대’ 피켓을 들고 앉아 있는 주민과 지킴이들을 거칠게 끌어내는 모습은 마치 괴물로 보였다. 자연을 닮아 순박한 주민들이 옹기종기 평화롭게 사는 소성리와 노곡리 등 인근 마을을 짓밟고 군사기지를 만들고 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두려웠을까. 이는 소성리와 성주, 김천 주민만의 고통은 아니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고통이고 절망인 것은 불을 보듯 분명했다. 분단의 아픔과 모순을 소성리 주민들은 매일 매 순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었다.

사드로 인해 일상이 무너진 6년이라는 세월을 쉼 없이 평화를 외쳐온 눈물 나는 이 소성리에서 가장 든든한 한 축이 진밭평화교당이었고, 교무님들과 교도들의 심지 굳건한 평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산종사께서 구도의 길을 걸어온 성스러운 달마산에 배치된 사드를 반대하며 의연히 투쟁한 지 날수로 곧 2천일을 맞게 되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처음 소성리에 들어왔을 때 진밭교 길 위에 서 있는 원불교 천막기도소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기도 드리는 하얀 법복 입은 교무님들의 모습 또한 낯선 풍경으로 와 닿았는데 나로선 원불교를 처음 가까이에서 마주한 셈이다. 그때 교무님들과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간절함과 진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숙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청년 시절 사회과학에 매료돼 있었고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던 나는 관념적인 세계관을 지닌 종교와는 맞지 않는다고 여겨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소성리에서 만난 정산종사의 민중의식에 기반을 둔 말씀과 원불교의 실천적인 모습, 혹은 평화운동은 종교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주는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도 남았다.

진밭평화교당이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소성리를 지키고 이 땅의 평화를 지킨 지 2천일이 되었다는 사실에 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2천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엄청난 세월의 무게와 아득함, 그리고 그 감동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교무님들과 교도들이 그 긴긴 세월 평화를 염원하며 흘렸을 눈물과 열망이 반짝이는 구슬처럼 엮여 소성리를 지켜낼 수 있었고 소성리가 한반도 최전선으로, 평화운동의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원불교가 함께 싸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고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소성리와 성주를 지금은 우리 동네 안마당처럼 돌아다닌다. 새벽잠을 설치며 소성리에 들락거린 지 골백번은 되었고 햇수로 6년이 되었다. 경찰작전이 없어 새벽에 소성리에 오지 않는 날에도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소성리 사람 다 됐다. 소성리에서 가장 빛나는 이들을 꼽으라면 우리 할매들이고, 할매들이 꿋꿋하게 그 자리에 서 계실 수 있게 보살펴온 분들이 교무님들이다. 이 땅의 평화와 전쟁반대를 외친 진밭평화교당의 2천일에 이르는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지킴이들도 그 힘을 받아 씩씩하게 새벽길을 달려온다.

사드를 뽑아내고 평화와 통일세상을 만들어가는데 2천일이 아니라 앞으로 2천일이 더 걸리더라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킬 교무님들과 교도들을 상상하니 고맙고 든든하다. 나 역시 그 자리에 함께하리라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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