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수행편 제6장「일기법」중 '정기일기법'의 한 조목으로 '심신작용의 처리건'이 등장합니다. 심신작용의 처리건은 학원이나 선원에서 훈련을 받는 공부인이 정기로 기재하는 일기 방법 중 하나로, 정기일기법 3조에“당일의 시비를 감정하여 죄복의 결산을 알게 하며 시비이해를 밝혀 모든 일을 작용할 때 취사의 능력을 얻게 함이요.”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심신(心身)은 몸과 마음인 육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심신작용이란 눈, 귀, 코, 입, 몸, 마음인 육근을 작용하는 것으로, 육근의 대상인 형상, 소리, 냄새, 맛, 느낌, 법과 인연하여 육식을 짓는 것입니다. 결국 심신작용 처리는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작업 취사와 상통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육근 작업을 피할 것이 아니라 잘 지어라는 것입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작업을 적극적으로 짓는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업을 잘 지어 낙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설사 업을 잘못 지었으면 참회하여 다시 지어라는 것입니다. 사후에 정토나 천국에 태어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심신작용의 처리로 낙원을 구현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신작용의 처리건을 기재시키는 뜻은'당일의 시비를 감정하여 죄복의 결산을 알게 하는 것'이며'시비 이해를 밝혀 모든 일을 작용할 때 취사의 능력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비와 이해의 기준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자기 편리나 합리화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타당하나 남에게 곤란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비이해를 판단하는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정전』교의편 '사리연구'절에서 시비이해의 판단 근거로 천조(天造)의 대소유무를 제시합니다. 천조의 대소유무는 이(理)로써 이 이치가 바로 일원상입니다.
천조의 대소유무인 일원상을 따라서 시비를 감정하여 죄복을 결산하며 시비이해를 밝혀 취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시비이해는 대소유무의 이치에 바탕한 시비이해입니다.
시비이해의 근거인 천조의 대소유무에서 대(大)는 만법으로 분별되기 이전이라면, 소(小)는 형형색색으로 구별되는 만법· 만상이요, 유무(有無)는 온갖 모습으로 변태하는 변화입니다.
이러한 대소유무를 시비이해에 적용하면, 대(大)는 시비이해를 초월한 시비이해 이전 자리입니다. 즉 시비이해로 분별하기 이전으로 시비이해에 물들지 않는 자리입니다.
소(小)는 청정한 자리에서 시비이해가 선명하게 드러난 자리입니다. 청정한 대(大)에 바탕한 소(小)로써 만상의 시비이해가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바탕이 청정하니 구별도 선명한 것입니다.
유무(有無)는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는 변태하는 변화의 흐름으로, 시비이해의 소종래와 변화 과정이 분명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당일의 시비를 감정하여 죄복의 결산을 알게 하는 것'도 천조의 대소유무인 일원상에 표준하여 일원상이 드러나면 시비가 감정되는 것입니다. 대소유무의 일원상에 합당하면 복락이고 일원상에 부당하면 죄해(罪害)라는 죄복결산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시비 이해를 밝혀 모든 일을 작용할 때 취사의 능력을 얻게 한다.'는 것은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 시비이해를 밝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취사력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시비이해를 밝히기 위해서는 천조의 대소유무인 일원상을 표본으로 모셔야하는 것입니다. 시비의 감정도 죄복의 결산도 천조의 대소유무인 일원상으로 하는 것이며, 시비이해를 밝혀 취사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천조의 대소유무인 일원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일원상이 드러나지 않는 심신작용의 처리는 표본 없는 방황으로, 시비감정도 죄복 결산도 아닌 자행자지(自行自止)입니다. 즉 심신작용의 처리는 천조의 대소유무인 일원상에 따라 시비이해를 초월하여 시비이해를 운전하고, 죄복을 초월하여 죄복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심신작용처리의 심신은 눈, 귀, 코, 입, 몸, 마음인 육근이라면, 작용은 육근을 사용하는 것이며, 처리는 일원상의 이치에 맞게 시비이해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원상은 심신작용처리의 표준이요 준거입니다. 결국 눈을 사용할 때 일원상으로 보고, 귀를 사용할 때 일원상으로 듣고, 코를 사용할 때 일원상으로 냄새 맡고, 입을 사용할 때 일원상으로 맛보고, 몸을 사용할 때 일원상으로 감촉을 느끼고, 마음을 사용할 때 일원상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