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때가 되면,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새해의 계획을 잘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들 것이다. 특히 마음공부에 뜻을 둔 사람은 '서원'과 '참회' 두 가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서원이 약하면 끝까지 공부를 해나갈 동력을 잃게되고, 참회가 없으면 두터운 업장(業障)을 이겨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좌산상사는 서원은 '무한동력'이요, 참회는 '광명'이며, 서원이 앞에서 이끌어주는 '고삐'라면 참회는 뒤에서 독려하는 '채찍'이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일과 속에서 매일 아침에 서원다짐의 기도를 올리고, 밤에 반성참회의 기도를 올리며, 월초·월말과 정초·연말에도 서원다짐과 반성참회의 기도를 각각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참회를 해야 할까?
어느 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을 알현하고 나오던 공자는 왕손가(王孫賈)라는 대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아랫목 신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부뚜막 신에게 잘 보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왕손가는 당시 위나라의 병권을 잡고 있는 실세로서 공자를 회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높은 자리에 있으나 실제로 제사의 주체가 아닌 '아랫목 신'을 위령공에 빗대고, 비록 지위는 낮지만 제사를 담당하는 '부뚜막 신'을 자신에 빗대어 질문한 것이다. 이에 공자는“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 논어』, 「팔일」)라고 답한다.
여기서 '그렇지 않다'는 말은 아부하는 행위는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죄가 되어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며,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는 말은 곧 진리의 제재(天制)가 내려졌음을 의미한다. 대산종사는 사람이 스스로 제재(自制)를 하지 못하고, 사람의 제재(人制)도 받지 않을 때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의 제재가 내린다고 말씀하였다. 진리의 제재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무서운 제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공자가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고까지 단언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산종사는 “내 한 마음 반성참회 할 때 천지신명이 감응하여 삼세업장이 청정해진다.”고 말씀하며, 공부인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여도 반성과 참회로 물러나서 새롭게 출발하면 그때부터 깨끗하고 죄가 없어지는 것을 알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잘못에 대해 이리저리 변명하다가 결국에는 더욱 큰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고 경계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참회는 죄고에 신음하는 사람에게 절망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새롭게 살리고자 하는 대자대비의 법문인 것이다.
또한 대산종사는 참다운 참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여실히 깨닫고 믿어서 남을 속이고 해(害)함이 곧 나를 속이고 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공자도 이러한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왕손가의 질문에 그렇게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전』「참회문」에서는 참회의 궁극적인 목적이 안으로도 밖으로도 중간에도 털끝만한 죄상(罪相: 현재 죄를 짓고 있는 상태)이 남아 있게 하지 않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을 아울러 해야함이 강조된다. 사참이란 사안에 따라 그 당처와 삼보(三寶) 전에 사죄를 올리고 불공을 다하는 것이며, 이참이란 성품자리에서 죄성(罪性: 죄를 지을 수 있는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것)을 녹여내는 방법으로 원래 죄성이 공한 자리를 깨쳐 안으로 번뇌와 망상을 제거해가는 방법이다.
대산종사는 사참의 방법에 대해 첫째, 삼세에 몸과 입과 마음으로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일체 죄업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 과보의 두려움을 절실히 깨달으며 둘째, 마음을 챙기고 스스로 경계하여 고쳐 나가서 모든 악을 처음부터 짓지 않도록 계문을 잘 지키라고 말씀한다. 한편 이참의 방법에 대해서는 첫째, 걸림 없는 선정(禪定)에 들며 둘째, 염불삼매에 들며 셋째, 송주삼매에 드는 길을 말씀한다. 이처럼 참회의 원리와 목적과 방법과 결과는 모두 대낮같이 밝혀져 있다. 단지 우리들 각자의 관념적 참회가 아닌 사실적 참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12월의 끝자락에서 그 끝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