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성지, 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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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성지, 6km
  • 이태은 교도
  • 승인 2019.06.05 14:41
  • 호수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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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26일, 새벽1시 23분58초. 당시 소련 연방국가였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제4호 원자로가 몇 차례의 폭발 후 천장이 날아가고 무너져 내렸다. 사고 직후 10일 동안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유출됐고, 날씨에 따라 다양한 기류를 타고 북반구 전체에 불규칙적으로 분산됐다.

4월29일 폴란드·독일·오스트리아·루마니아, 30일 스위스·이탈리아 북부, 5월1~2일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영국·그리스 북부·일본, 3일 이스라엘·쿠웨이트·터키, 4일 중국, 5일 인도 그리고 5~6일 사이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고준위의 자연방사선이 측정됐다. 체르노빌이 세계적 문제가 되는 데 10여 일이 걸렸을 뿐이다.

해당 지역에 방사성 기단이 지나면서 비가 내렸는지, 얼마나 내렸는지에 따라 방사선량은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핵발전소가 하나도 없었지만, 체르노빌 국경에 인접한 벨라루스(백러시아)는 485개의 마을을 잃었다. 그중 70개 마을은 땅속으로 영원히 매장됐다. 1996년 발간한 벨라루스 백과사전에 의하면 오염지역 거주민 210만 명 중 어린이가 70만 명이다. 벨라루스 국민의 주요사망원인은 방사선 피폭이다. 사고결과 5천만 퀴리의 방사성 핵종이 방출됐고, 비구름을 타고 70%가 벨라루스에 도달했다. 국토의 23%가 방사성물질 세슘137로 오염됐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환경담당 고문을 지낸 알렉세이 야블로코프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관련 인터뷰에서 “윤리적 문제가 있었지만 체르노빌사고 당시 인공강우를 비밀리에 실시해 모스크바 등 러시아 중부도시들로 향하던 방사성 물질이 축적된 구름을 인근의 툴라, 라쟌, 칼루 지역으로 돌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사고가 난 우크라이나는 4.8%, 러시아는 0.5%가 오염됐다.

2019년 5월10일 영광 한빛1호기 제어봉 제어능력 측정시험 중 원자로의 열출력이 제한치 5%를 초과해 1분 만에 18%로 급등하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원자로 출력이 급증하면 즉시 원자로를 정지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12시간이 지나서야 수동정지한 사실이 5월21일 밝혀졌다. 11일이 지나고 나서야 말이다.

필자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핵발전소 사고인 33년 전 체르노빌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이번 한빛1호기 사고가 ‘순간적으로 폭주하는 원자로를 제어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체르노빌 핵참사와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영광 한빛1호기 원자로는 출력 25%까지 올라가면 자동 정지하도록 설계돼 체르노빌과 비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운전원들이 특성시험 시 출력 5%가 넘으면 즉시 정지하라는 운영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중앙제어실에는 14명의 작업자가 있었는데 아무도 ‘5% 즉시정지’라는 지침을 몰랐다고 한다. 원자로에 제어봉을 넣은 작업자 또한 무면허였는데 면허소지자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작업자의 판단으로 진행한 것인지도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제어봉, 핵연료도 급작스러운 출력증강으로 인해 파손되지 않았을지 우려가 커진다. 체르노빌보다 더 아찔한 상황이다.

20년 동안 준비한 체르노빌 사람들의 증언록으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저자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것이지만, 평화적 핵은 집집마다 있는 전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이 쌍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독백한다. 열출력이 높아지고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핵발전소는 핵무기보다 더한 파괴력을 가진다.

“내가 증언하는 것이 과거인지 또는 미래인지, 아직도 자신에게 묻고 있다”는 알렉시예비치의 말마따나 체르노빌은 우리의 미래다. 무서운 전쟁과 혁명이 20세기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체르노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영산성지로부터 6km 남짓 거리에 영광 한빛1호기가 존재한다.

 

[6월 7일자]

 

이태은 교도(서울교당, 원불교환경연대)
이태은 교도(서울교당, 원불교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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