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용선에 실린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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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용선에 실린 짐
  • 박세웅 교무
  • 승인 2019.07.10 00:55
  • 호수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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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웅 교무의 유림산책
박세웅 교무

정녀지원서 폐지, 정년연장 등 교단 안으로 변화가 시도되는 시기인지라 그에 따라 자연히 이곳저곳에서 많은 시비가 들린다. 하나의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대중의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시비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대종사는 세상 전체가 곧 일과 이치 그것이니 우리 인생은 일과 이치를 여의지 못할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며 세상은 일과 이치를 그대로 펴 놓은 경전이라, 각자가 시비선악의 많은 일들을 잘 보아서 옳고 이로운 일을 취하여 행하고 그르고 해 될 일은 놓는다면 그것이 산 경전이 된다고 했다. 결국 시비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부심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수많은 시비를 과연 대종사의 가르침대로 공부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일까.

공자는 13년간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할 때에 자주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날은 공자가 송(宋)나라를 지나다 송나라의 대장군 사마환퇴(司馬桓퇴)가 큰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공자 일행을 죽이려고 한 일이 있었다. 그가 공자를 죽이려 했던 이유는 분명치가 않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늘이 내게 덕을 부여해 주셨거늘, 환퇴가 나를 어찌 하겠는가?”(<논어> ‘술이’)하며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공자를 초빙하였을 때, 진나라와 채나라에서는 현명한 공자가 강한 초나라로 가게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공자의 가는 길을 막았다. 그 때문에 공자 일행은 꼼짝도 못하게 된 채 양식도 떨어지고 병든 제자가 생기는 등 고생을 겪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공자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심법을 놓지 않는다. 정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돌아다니는 공자의 몰골을 보고 “상갓집 개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처럼 공자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의 제자들 역시 세상의 조롱과 시비의 풍랑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전진했다.

혹자는 원불교에는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고 한탄한다. 그 많은 일의 시비에서 살다 보니 때론 허탈하고 절망스러운 심경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도한 강물은 멀리서 보면 마치 멈춘 듯이 보이지만 오랜 세월을 유유히 흘러가고 있듯이 우리 회상의 교운(敎運)도 단촉한 시선으로 보면 그 운이 다한 듯 보이지만, 주세불 대종사의 원대한 계획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시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승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으로 인해 각자의 자리에서 가볍게 요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산종사는 “풍랑을 만났을 때 사람을 많이 실은 배는 전복하기 쉬우나 짐을 많이 실은 배는 전복할 염려가 크지 않나니, 그 까닭은 짐은 움직임이 없으나 사람은 요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이 회상에 실린 짐과 같이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어떤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어쩌면 우리의 스승들은 반야용선의 선장이 아니라 배의 한구석에서 흔들리지 않는 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분들이 정말로 시비를 몰라서 짐을 자처했을까. 시비의 풍랑 속에 너도나도 시비를 따지려고 요동친다면 우리의 반야용선은 전복되고 말 것이다. 이는 시비를 가리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모든 시비가 끊어진 가운데 참다운 시비가 있음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대종사의 부름을 따라 기꺼이 반야용선에 뛰어오른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종사를 믿고 종통과 법통을 이은 종법사를 믿고 반야용선의 요동하지 않는 짐이 되어 각자의 맡은 바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 나가자.

‘각자의 맡은 바 직장에서 그 일 그 일에 힘과 마음을 다하면 곧 천지행을 함이 되나니라.’(전무출신의 도 12조)

7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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