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너·우리의 아픔
상태바
나·너·우리의 아픔
  • 황상원 교무
  • 승인 2019.09.18 11:56
  • 호수 1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벌스피크아웃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겪고 있는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을까.
한 인간의 존재는 다양성(Diversity)과 복잡성(Complexity)의 조합물이다. 인간이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회, 국가, 조직도 마찬가지다. 만물이 생로병사의 이치를 피해갈 수 없듯, 한 사회도 그 안의 병듦을 통해 결국 멸망의 원리로 도달하게 된다. 세계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필자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속에 병듦과 폐해가 한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성의 폐해가 세대를 이어가고 있음을 하와이동서문화센터에서 공부하며 확인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아픔을 위로해야 할까. 한미일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한 교도님이 질문을 해왔다. “교무님은 일본과 한국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만약 내가 하와이에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면, 나의 대답은 정말 ‘그 몹쓸 인간들’이라 했을 것이다.

나와 함께 하와이 동아시아 지도자 과정에서 공부한 동료들은 약 17개국의 아시아 및 미국 대륙에서 온 사람들로 AI 방면의 교육가, 기자, 항공사 팀원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당대의 고통을 겪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갈등과 해결점을 찾으러 모인 지도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온 TV아나운서와  싱가포르에서 온 대학교 교육가 동료 사이의 대화는 전쟁을 겪은 3세대가 서로의 아픔을 토로하고 치유하는 장이었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아픔을 지닌 동료다. 우리는 각자의 아픔을 공유하며 그 해결점을 찾고자 했으나 결론은 당연히 없었다. 함께 참여한 청중과 미국인 슈퍼바이저 외 교육가 등은 서로 눈시울을 닦으며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다.

리더십 마지막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Zip line(한 팀이 되어 높은 로프 위에서 서로를 끌어줘야 내려올 수 있는 게임)이었다. 약 15미터 상공에서 떨어져 다치지 않으려면, 몸으로 서로를 이끌고 도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 것도 사치였다. 우리는 오직 한 팀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호놀룰루 교회가 공동 주최한 ‘함께 잘 살기 위한 여정(Jurneys to the Wellness)’ 프로그램은 하와이 교회연합에서 주최한 또 다른 종교 연합 간의 모임이었다. 나는 이곳에 방문해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얼마 동안 감옥에 갇혀 미국인으로부터 인간 이하의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또 그들이 인권을 주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게 됐다. 정복의 역사와 핍박의 역사는 한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있었다.

역사는 반드시 흐른다.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4세대를 이끌 것인가. 나의 존재가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아픔은 과연 나의 아픔인가, 그들의 아픔인가? 이 화두 안에 역사의 고통을 겪은 해답이 있지 않을까! 그 상생의 기운이 전해질 때, 그 복잡성과 다양성은 균형과 조화를 갖춘 균등한 사회로 성장해 갈 것이다.

9월 20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