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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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마
  • 박세웅 교무
  • 승인 2019.10.09 00:13
  • 호수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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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무의 유림산책46

가을바람과 햇살이 참 좋다. 대종사가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통해 모든 공부인으로 하여금 일분 일각도 공부를 떠나지 않게 한 것만 보더라도 적공(積功)을 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과 계절이 따로 정해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을은 적공을 하기에 여러모로 참 좋다.

적공은 훈련이다. 심신의 훈련을 통해 마음혁명이 일어나고 마음혁명이 일어남으로써 기질변화를 가져온다. 부처, 공자, 예수 그리고 대종사와 같은 성인들은 자기훈련을 통해 세계를 훈련시켜 개조한 분들이다. 그런데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바뀌지 아니한다.”(<논어>, 양화)

어떤 학자는 이 말을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은 노력하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은 가만히 두더라도 어리석어지지 않는다”라고 해석한다. 얼핏 보면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되니까 공자가 애초부터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포기한 말처럼 들린다. 공자는 정말 포기한 것일까? 만약 그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이 말에 담긴 공자의 본의는 과연 무엇일까?

공자가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이미 한 번 도달한 수행의 경지에서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불교의 여섯 단계 법위등급 가운데 다섯 번째인 출가위 이상이라야 불퇴전이 된다고 밝히며, 불퇴전이란 공부심을 놓아도 퇴전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님을 강조한다. 세상의 이치가 어느 것 하나라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불퇴전에 오른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공부심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어떠한 순역 경계라도 그 마음을 물러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불퇴전이라고 이른다.

한편 진실로 적공을 한다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은 바뀌지 못한다고 단정하였을까?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이란 자포(自暴)와 자기(自棄)를 하는 자를 가리킨다. 유학에서 자포하는 사람은 거절하여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자기하는 사람은 체념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를 뜻한다. 자포자기를 하는 사람은 비록 공자가 다시 환생하여 이끌어준다고 하여도 결코 바뀔 수가 없다고까지 이야기한다.

대종사 역시 “큰 공부를 방해하는 두 마장(魔障)이 있나니, 하나는 제 근기를 스스로 무시하고 자포자기하여 향상을 끊음이요, 둘은 작은 지견에 스스로 만족하고 자존자대하여 향상을 끊음이니, 이 두 마장을 벗어나지 못하고는 큰 공부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공자가 어리석은 사람은 바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그 사람의 재질이 둔하여 바뀌기가 어렵기 때문에 포기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가 이미 체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바뀌지 못함을 의미한다. 정산종사는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고목”이라고 했다. 아무리 시절의 인연이 좋고, 훌륭한 스승이 이끌어준다고 하여도 자포자기하는 자는 생기가 없는지라 그 누구도 어쩔 수가 없다.

대산종사는 우리가 부처를 아는 데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데 자성(自性)이 부처인 것을 깨친 사람이 대학원생 수준에서 부처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며 “우리가 공부할 때 밖에서만 구하지 말고 안으로 돌려 자성이 부처인 것을 깨치면 항마도 되고 출가도 되고 여래도 되나니, 자기를 업신여기거나 포기하지 말고 적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처도 공자도 대종사도 단 한 번도 나를 포기하신 적이 없다. 오직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부처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대분심(大忿心)으로 적공하고 또 적공할 뿐이다. 때마침 가을이 오지 않았는가.

“포기는 김장이나 할 때 쓰라고 해.”

10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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