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여한·사필귀정·사드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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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여한·사필귀정·사드철거
  • 박수규
  • 승인 2019.11.23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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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천일야화7

닳고 해진 사무여한 깃발들이 초겨울 바람에 세차게 나부낍니다. 원불교가 개창할 때 믿음의 선배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기도에 정진하여 마침내 하늘의 징표를 얻었다고 하지요. 달마산 골바람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한여름 뙤약볕 한 점 가릴 수도 없는 여기 진밭다리 위 천막교당에서 사무여한 기도의 그 서슬 퍼런 기상이 백날 그리고 천날째 이어집니다. 우리는 하늘의 징표를 얻는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천날이 가고 설사 만날이 가더라도 우리의 기도가 멈출 수 없는 것은 사필귀정의 약속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하늘에 비는 어머니들의 기도를 닮았습니다. 우리가 뜻을 모아 간구하는 ‘평화’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소박한 바람입니다. 누군가의 탐욕으로 인해 누군가의 내일이 위협당하지 않는 것, 누구라도 선물 같은 오늘 하루를 살아갈 권리, 그것을 위해 우리는 함께 기도합니다. 진밭교당에서 우리가 기도로써 연대할 때, 굳이 사은이 아니어도 좋고 굳이 하나님이 아니어도 좋고 굳이 관세음보살이 아니어도 좋고, 또한 그 모두여도 괜찮습니다. 이 좁은 천막교당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넓은 평화의 기도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 3월, 국방부가 롯데CC 부지를 빙 둘러 철조망으로 길을 막고, 교무님들이 구도길을 열라며 연좌기도를 시작하던 그 날, 찬서리를 가려줄 천조각 하나 없이 진밭평화교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원불교 교도와 교무님들뿐만 아니라, 제국의 탐욕과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많은 이들이 기도하고 연대하며 함께 지키는 사드철회의 최전선 바리케이트가 되었습니다. 바리케이트에 올라선 이상 퇴각은 없습니다. 오늘도 세찬 바람에 진밭교당 사무여한 깃발이 나부낍니다.

글/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 박수규 대변인

♣ 2017년 3월11일에 시작된 소성리 진밭 평화기도가 오는 12월 5일 1000일을 맞는다. 천일의 기도 적공을 통해 축적한 평화의 몸짓과 평화의 바람을 한울안신문 온라인뉴스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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