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되고, 다음날 원불교 성주성지가 있는 소성리를 찾았다. 오후 2시 평화행동시민들은 어김없이 진밭교를 향해 행진했고, 나는 김선명 교무님과 법복을 입고 대열 맨 앞줄에 서서 걸었다. 하지만 우리의 걸음은 진밭교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경찰들이 우리 앞을 막아섰고, 조금만 더 맞서면 서로 코가 맞닿을 정도로 대치 상태까지 갔다. 그렇게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시 진밭의 3월은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의 끝이었다.
우리는 선 채로 “구도길을 열으라”고 지속적으로 외쳤다. 외치고 또 외치다 오기가 생겼다. 안 되겠다 싶어 제주행 비행기를 포기하고 “(구도길을) 열어줄 때까지 안 가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마음을 먹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동네 분들에게 여기 앉아야겠으니 의자를 갖다 달라고 한 뒤, 맨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오후 4시가 넘어 동네 분들이 깔개를 갖다 주셨다. 자리가 넓어졌다. 저녁도 못 먹고 해는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동네 어르신들께서 먹거리와 비닐을 가져와 어깨에 둘러주셨다. 비닐 한 장에 뼛속까지 파고든 시린 바람이 막아졌다. 초저녁에는 선명 교무님과 그 뒤 밤이 깊어지면서 마을회관을 정리하고 올라온 강현욱 교무님과 셋이서 진밭교 위에 주저앉아 독경과 좌선을 하고 선보를 하며 시린 새벽 찬 이슬을 이겨냈다.
비닐 하나에 의지하며 일심으로 쏟아낸 독경소리는 아마도 내 교역생활 중에서 가장 큰 일심적공 소리로 기억하고 싶다. 어느덧 새벽이 밝아오고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동네회관까지 내려가는데 무섭지가 않았다. 신바람 나게 법복을 휘날리며 다녀왔다. 정산종사님과 주산종사님이 나신 성주성지를 지키고 이 땅에 전쟁 없는 평화세상을 염원했던 그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놓지 않고 기도하고 염원하는 일상이 됐다.
진밭 그곳은,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기도하는 평화의 성지요, 평화가 실현되는 학습장이 될 것으로 믿는다. 천일 동안 그 자리를 지켰던 교무님, 마을주민들, 그리고 평화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 2017년 3월11일에 시작된 소성리 진밭 평화기도가 오는 12월 5일 1000일을 맞는다. 천일의 기도 적공을 통해 축적한 평화의 몸짓과 평화의 바람을 한울안신문 온라인뉴스에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