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밭 천일, 그렇게 기도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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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천일, 그렇게 기도는 시작됐다
  • 강은도
  • 승인 2019.11.24 0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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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천일야화8
2017년 3월 11일 강은도 교무와 김선명 교무가 최초로 바닥에 주저앉은 진밭교 위 기도장소이다. 일주일 동안 비닐로 평화계곡 골바람을 이겨내며 릴레이 철야기도를 올렸다. 소성리 어르신들도 맨바닥에 앉아 연대해 줬다.  
2017년 3월 18일, 전국에서 모인 평화행동 시민들이 진밭교 위 맨바닥에서 매일 기도를 올리는 원불교 교무들을 위해 3평 크기의 간이 천막을 설치해 줬으나, 경찰이 즉시 퇴거 명령을 내리며 의경 100여 명을 동원해 천막을 강제 철거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되고, 다음날 원불교 성주성지가 있는 소성리를 찾았다. 오후 2시 평화행동시민들은 어김없이 진밭교를 향해 행진했고, 나는 김선명 교무님과 법복을 입고 대열 맨 앞줄에 서서 걸었다. 하지만 우리의 걸음은 진밭교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경찰들이 우리 앞을 막아섰고, 조금만 더 맞서면 서로 코가 맞닿을 정도로 대치 상태까지 갔다. 그렇게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시 진밭의 3월은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의 끝이었다.

우리는 선 채로 “구도길을 열으라”고 지속적으로 외쳤다. 외치고 또 외치다 오기가 생겼다. 안 되겠다 싶어 제주행 비행기를 포기하고 “(구도길을) 열어줄 때까지 안 가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마음을 먹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동네 분들에게 여기 앉아야겠으니 의자를 갖다 달라고 한 뒤, 맨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오후 4시가 넘어 동네 분들이 깔개를 갖다 주셨다. 자리가 넓어졌다. 저녁도 못 먹고 해는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동네 어르신들께서 먹거리와 비닐을 가져와 어깨에 둘러주셨다. 비닐 한 장에 뼛속까지 파고든 시린 바람이 막아졌다. 초저녁에는 선명 교무님과 그 뒤 밤이 깊어지면서 마을회관을 정리하고 올라온 강현욱 교무님과 셋이서 진밭교 위에 주저앉아 독경과 좌선을 하고 선보를 하며 시린 새벽 찬 이슬을 이겨냈다.

비닐 하나에 의지하며 일심으로 쏟아낸 독경소리는 아마도 내 교역생활 중에서 가장 큰 일심적공 소리로 기억하고 싶다. 어느덧 새벽이 밝아오고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동네회관까지 내려가는데 무섭지가 않았다. 신바람 나게 법복을 휘날리며 다녀왔다. 정산종사님과 주산종사님이 나신 성주성지를 지키고 이 땅에 전쟁 없는 평화세상을 염원했던 그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놓지 않고 기도하고 염원하는 일상이 됐다.

진밭 그곳은,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기도하는 평화의 성지요, 평화가 실현되는 학습장이 될 것으로 믿는다. 천일 동안 그 자리를 지켰던 교무님, 마을주민들, 그리고 평화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글/ 제주 한경교당 강은도 교무

♣ 2017년 3월11일에 시작된 소성리 진밭 평화기도가 오는 12월 5일 1000일을 맞는다. 천일의 기도 적공을 통해 축적한 평화의 몸짓과 평화의 바람을 한울안신문 온라인뉴스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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