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에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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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에 가는 이유
  • 추도엽
  • 승인 2019.11.2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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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천일야화11
추도엽 교무가 단풍을 손수 모아 평화의 마음을 담은 작품

그렇게 소성리 진밭 평화교당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이어온 기도가 1000일이 되어가고 있다. 천일이 지나도 사드를 뽑아낼 때까지 계속 외칠 것이다. 일제에 맞서 36년간이나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처럼 미국의 지배에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룰 때까지 우리, 깨어 있자.

1987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대학가에서는 "독재타도"와 "양키 고 홈" "미군 철수" 구호를 외쳤다. 어느 때인가는 대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방화하는 사건이 이슈가 됐었다. 경북의 소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모습이었고 이해 못할 상황들이었다.

최근에 보안 해제된 미정보부 문서에서 한국 전쟁 중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형무소 제소자 주로 여순사건 및 제주 4.3사건 관련자 포함 민간인 8천여 명을 학살한 현장 보고서를 찾았다. 거기에는 자세한 학살내용과 함께 현장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고 신뢰도 A1으로 매우 확실한 정보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 사진에는 미군 트럭으로 재소자를 운반하는 모습, 학살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미군의 모습 등이 찍혀 있다. 학살 현장 바로 옆에서 촬영을 했다는 것은 현장을 지휘 감독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또 다른 사진에는 여순 사건 진압계획을 세우는 지휘관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한국 장교 2명을 미국장교 3명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에서 이 당시 한국군의 작전은 미군의 통제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주 5.18 민주항쟁 당시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고 결국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미국으로 날아가 미국의 인정을 받고 묵인 하에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87년의 대학가는 이런 미국의 실상을 알고 있었기에 "양키 고 홈"을 외쳤을 것이다.

진밭 평화기도 973일째 되는 날 평화행동에 나선 추도엽 교무(오른쪽 두번째) 평화지킴이들.

지난 박근혜 탄핵 정국에 대통령 부재중 갑자기 사드가 배치되었다. 온갖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북한을 핑계로 막무가내로 진행된 사드 배치에 정작 분노한 것은 중국이었고 사드 보복이란 이름의 경제 보복으로 우리는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또한 현재 정권이 바뀌었지만 기대했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변화가 없는 것은 대한민국을 실제로 지배하는 더 큰 세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대상이 미국이라는 것은 자명해졌다. 휴전선 판문점에서 남북 휴전을 감시하는 유엔사령부도 유엔 소속이 아니라는 것이 최근 러시아 유엔 대표의 발언으로 밝혀졌다. 70여 년 동안 우리는 모두 미국에 속고 있었던 것이다.

2017년 미군이 소성리에 들여놓은 사드는 우리나라의 안보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미국의 패권을 위한 전략무기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소성리를 찾아 평화 100배를 하고 기지 정문에서 외친다. “사드 빼라” “유엔사령부 해체하라” “미군철수” “양키 고 홈”.

단풍 들 때 떠나라, 미군철수.

그렇게 소성리 진밭 평화교당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이어온 기도가 1000일이 되어가고 있다. 천일이 지나도 사드를 뽑아낼 때까지 계속 외칠 것이다. 일제에 맞서 36년간이나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처럼 미국의 지배에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룰 때까지 우리, 깨어 있자.

 

 

♣ 2017년 3월11일에 시작된 소성리 진밭 평화기도가 오는 12월 5일 1000일을 맞는다. 천일의 기도 적공을 통해 축적한 평화의 몸짓과 평화의 바람을 한울안신문 온라인뉴스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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