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평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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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평화들
  • 전철후 교무
  • 승인 2020.01.15 18:18
  • 호수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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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문1

대산종사는 세계평화를 위한 삼대제언으로 종교연합, NGO활동(공동시장 개척), 마음공부(심전계발) 등을 제안했다. 이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세계주의인 일원주의와 정산종사의 세계종교와 인종과 민족의 대동화합을 촉구한 삼동윤리를 실현하는 데 있다. 원불교의 경륜과 사상이 세계 인류 안에서 꽃피우기 위한 궁극적인 가치는 ‘평화’이다.

필자는 학부시절 풍물패 동아리인 동남풍이 UN과 아프리카의 문화축제 때 공연자로 초청되면서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하게 됐다. 르완다의 키갈리라는 수도에 도착해 보니 1994년 내전과 학살로 인해 3개월 만에 약100만 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장소였다.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로 인해서 최악의 대참사를 맞이한 것이다. 그 이후 한국의 역사적 기억, 네팔 봉사활동,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독일의 홀로코스트 등을 방문하면서 평화에 대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평화(平和, peace)란 무엇일까? 

‘평(平)’이란 단순히 반듯한 기계적, 물리적 정지 상태라기보다는 갇혀 있는 기운을 헤쳐서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정신 상태를 의미하며 골고루 갈라놓아서 많고 적고가 없도록 고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화(和)’란 음악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조화롭게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평화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고르게 하고 서로 조화를 이뤄 그 기운을 활짝 열리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평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인간의 ‘살림’이고 새 세상의 ‘열림’이며, ‘새롭게 열린 세상’을 구현해 가자는 정신개벽의 실천적 모습이다.

또한 ‘평화들’은 평화의 개념을 찾는 과정에서 평화는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저마다 다양하게 경험하는 평화들을 모두 긍정하고, 이들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평화들’이다. 한 사람의 평화 경험이 다른 사람의 평화 경험과 공유되면서 ‘평화들’은 만들어진다. 이러한 ‘평화들’이 인식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에서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해가는 ‘조화로움’이 필요하다. 

공동체(共同體)는 ‘같음(同)을 공유(共)하는 단체(體)’를 말한다. 획일적인 ‘같음’을 중시하기보다는 ‘공유’를 중요시해야 한다. 필자는 살림과 열림의 평화가 무엇인지 화두로 삼고 소태산 대종사의 <정전>, <대종경>과 다양한 ‘평화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하면서 평화인문의 지평을 공유하는 데 목적을 두려 한다.

처음 이 칼럼을 제안받고 많이 망설여졌다. 평화학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쉽지 않은 학문이었고 스스로 역량이 미천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배움에 보은하는 시간이며 더 깊은 성찰을 통해서 한걸음 진급해 가는 길이라 마음먹었다. 그저 소태산 대종사와 평화학의 대화 여정을 전하는 글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봐주길 바란다. 

전철후 교무는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에서 <함석헌의 평화사상>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에 있다.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의 평화학과 종교사회학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주요 논저는 <평화의 신학>(공저), <NGO와 공공성>등이 있다.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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