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인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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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문2
  • 전철후 교무
  • 승인 2020.02.18 20:03
  • 호수 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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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화와 평화인식

인간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인종주의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알베르 멤미(Albert Memmi)는 새로운 인종차별주의는 자신의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를 희생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행하는 ‘가치매김’이라 말한다. ‘가치매김’은 개인과 사회의 여러 요인으로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이라는 ‘차이’를 만들어 낸다. 타자에게 발견된 ‘차이’를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와 대비되는 자신은 긍정적인 것으로 그려내는 형식이다.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타자를 비인간화시키는 도구로 만든다. 근대성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폭력 중에 하나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타자화된 세계관이다. 이는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인간과 자연을 합리화한 경제인으로 인식한다. 인간을 젠더, 인종, 계급 등을 고려한 휴먼(Human)으로 보지 않고 가치중립적인 자본 활동가로 존재하게 한다.

이러한 근대성에 바탕한 타자화된 세계관은 자연스럽게 인간중심의 인식론으로 흐른다. 자연은 스스로의 주체성과 존엄성이 상실되고 단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만 이용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연생태계의 파괴를 부추겨왔다. 기후 환경운동가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타자화된 사람들’이 기후로 인한 재앙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될 것이라 지적했다. 기후 변화의 거의 모든 측면이 타자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강조한다.

최근 한국의 평화학 연구에서 ‘평화는 물리적·구조적·문화적 폭력을 줄여나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의 ‘감폭력(減暴力, minus-violence)’을 강조하고 있다. 구조적 폭력은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그 정신과 영혼에도 흔적을 남기며, 인간 내면의 인식 구조로부터 생기는 의도되지 않은 폭력까지 요인으로 본다. 종교의 감폭력 역할은 자기중심적 가치매김으로 인한 타자화된 세계관을 평화인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다.

종교가 추구하는 평화인식은 모든 생명이 아무런 차별 없이 존엄하게 존중받아야 하며, ‘살아있는 것은 모두 불성이 있다’는 내재적 초월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소태산 대종사는 ‘처처불(處處佛)’이라 말한다. 여기에는 타자화된 가치매김과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인간과 자연은 존재론적으로 동일할 뿐만 아니라 상호 의존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종교의 평화인식에서 출발해 사회·문화적 폭력들의 인문성찰을 위한 보편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오늘날의 인간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위험을 생산해내고 그 위험을 재분배하는, 지구화된 위험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위험사회에서 ‘부(富)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다고 보았다. 이는 왜 가난한 지역의 가난한 이들이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가에 답하고 있다. 아래로부터 협력하여 평화를 구체화하는 것이 종교적 요청이다. 종교가 지니는 올바른 평화인식의 확산과 시민사회와의 실천적 연대 과정에서 폭력을 줄여나갈 수 있다.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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