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차마마_Pacham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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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차마마_Pachamama
  • 이태은 교도
  • 승인 2020.04.01 12:58
  • 호수 11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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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감수성up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곤돌라가 멈춰서자 물고기가 돌아왔다. 출입이 통제된 인도 루시쿨랴 해변에는 80만 마리의 바다거북이 찾아와 알을 낳았다. 중국·미국공장이 멈추자 하늘은 맑아지고 미세먼지는 현저히 줄었다.

바이러스의 역설일까? ‘그만 괴롭히라’는 지구의 역습일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최후의 포식자’인 삼각형의 정점에 서 있음은 어렸을 때부터 사무치도록 들어왔던 이야기다. 근대문명은 ‘모든 자연은 원칙적으로 계산을 통해 정복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신념 위에 자연은 지배하고 착취하고 이용하는 대상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생각하는 국가들이 있었다.

안데스 원주민들에게 신앙의 대상인 영적인 존재 ‘어머니 대지’로 번역되는 ‘파차마마(Pachamama)’는 안데스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남미국가들이 헌법이나 국가 운영에 적극 차용하는 단어이다.

에콰도르는 지난 2008년 9월 자연과 조화하면서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안녕’을 추구할 것을 명하는 헌법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채택했다. 헌법 제72조는 “생명이 재창조되고 존재하는 곳인 자연 또는 ‘파차마마(Pachamama)’는 존재할 권리, 지속할 권리, 순환과 재생할 권리가 있음을 못 박았다. 이 신헌법은 국가에 생태계 파괴나 생물 멸종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들을 예방하고 제한하는 의무를 공식적으로 부여했을 뿐 아니라, 국가가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반 시민이 자연을 대신해 법적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실천에 무게를 더했다.

인디오 혈통의 코카 재배 농민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볼리비아는 2011년 세계최초로 지구의 생존권리를 보장하는 ‘어머니 지구법’을 새롭게 제정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생태주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내용으로 유명한 이 법은 자연의 권리를 11개 항목으로 규정한다. 존재하고 생존할 권리, 인간의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화하고 생명 순환을 지속할 권리, 깨끗한 물과 청정한 공기의 권리, 평형을 유지할 권리, 오염되지 않을 권리, 유전자나 세포가 조작되지 않을 권리, 지역공동체와 생태계의 균형에 영향을 주는 개발계획이나 거대 인프라 건설에 영향받지 않을 권리 등이다. 매년 외화의 1/3을 광물채굴을 통해 벌어들이는 볼리비아의 ‘어머니 지구법’ 배경에는 볼리비아인들이 모든 삶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파차마마(Pachamama)’가 있다.

이 밖에도 2017년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끈질긴 요청으로 ‘왕거누이 강’이 세계최초로 법적으로 인간과 동일한 위상을 갖게 되었다. 독일은 2002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스위스는 1992년 ‘동물의 존엄성’을 헌법에 명시했다.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개발과 성장을 멈추라고 한다. 맑아진 하늘과 푸르러진 강과 바다는 “이대로 사는 것이 어때?”라고 묻는다. 녹색과 성장은 애초에 불가능한 조합이다.

에콰도르 원유매장량의 20%에 이르는 ‘야수니 국립공원 유전개발 포기선언’을 이끌어냈던 신헌법 입안자이자 석유장관이었던 알베르토 아코스타는 2011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석유가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국가는 지혜로워야 하고, 사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 없이 살 수 없지만, 자연은 우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유전개발 포기선언은 유전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와 이산화탄소배출을 줄이는 대신 유전이익의 절반인 360억 달러를 국제사회에 요청했다. 결국,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실패했지만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경험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는 물질이 아닌 천지자연이라고 밝혀주셨다.

“어떻게 지구와 함께 살 것인가?”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해야 할 바이러스 시대의 화두이다.

자연감수성up
이태은
서울교당, 원불교환경연대

 

 

4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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