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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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건
  • 아메드
  • 승인 2020.07.21 15:50
  • 호수 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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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정착기6

처음부터 저도 이렇게 마음 편히 지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한국,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 미리 와 있던 동생을 만났습니다. 동생이 살고 있던 숙소에 갔고, 그곳의 환경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은 온돌집이었고 너무 오래돼서 난방을 하려고 아궁이에 불을 붙이면 방안에 연기가 가득 찰 정도로 방바닥에서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매일매일 그렇게 잠을 잤습니다. 모든 창문이 창호지로 돼 있고 겨울에는 난방을 틀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기에 매일 연기를 마시며 자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동생이 육지로 갔고 저는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홀로 제주도에 남았습니다. 그 집에서 혼자 생활하며 제대로 된 음식도 섭취하지 못하고, 점점 더 몸이 안 좋아져 결국에는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난민을 도와주는 곳을 찾을 수가 없어 제주시에 있는 이주민센터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곳에서도 도와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냈던 저는 ‘크론병’이라는 병을 얻게 됐습니다. 크론병인지도 몰랐기에 병원에서는 제대로 된 처방을 하지 못했고 그 당시 한국말을 하지 못했던 저는 어떻게 아픈지 설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너무 힘들고 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때는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가 지역가입이 안 됐을 때였습니다.

오랜 입원으로 병원비 감당이 어려워 퇴원하지 못하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난민인권센터에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제주의 외국인 친구들이 축구게임을 만들어서 그 게임 가입비로 저의 몇 개월치 집세를 보태 주었습니다.

2018년 제주에 예멘인들이 대거 넘어왔을 때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러한 도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중에서도 난민이라는 신분은 한국에서 살기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첫 번째 꿈은 귀화였고 두 번째 꿈은 크론병을 이겨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말을 못해 의사소통이 힘들었기에 한국어를 배웠고, 지금은 2달에 한 번 약물치료를 받지만, 크론병도 이겨냈다고 생각합니다. 귀화 허가가 떨어진 지금 저는, 꿈을 모두 이루었습니다.

이룰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을 다 이뤄서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사회복지사라는 새로운 꿈을 꿉니다.

이주민 정착기아메드천주교제주교구 나오미센터
이주민 정착기
아메드
천주교제주교구 나오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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