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을 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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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을 비우고
  • 이태은 교도
  • 승인 2020.07.21 16:04
  • 호수 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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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감수성UP

“인간의 필요를 위해선 지구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인간의 탐욕을 위해선 지구가 서너 개 있어도 모자란다.” 20세기 초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세계자연기금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처럼 살면 지구 3.2개가 필요하다.

매주 수요일 ‘원불교기후행동’ 피켓을 들고 점심시간 1시간 남짓 용산 하이원빌리지 앞에 서 있으면 플라스틱 컵에 일회용 빨대를 꼽고 음료를 즐기는 직장인들이 즐비하다. “사무실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발이 시리다”고 호소하는 그들의 손에는 얼음 잔뜩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손 시릴까 봐 종이홀더까지 씌운 플라스틱 컵이 들려있다.

눈살 찌푸릴 이도, 눈을 피하는 이도, 신경이 쓰였지만, 플라스틱 컵 행렬을 마주하니 아득해진다. 코로나가 점령한 일상엔 일회용과 배달 쓰레기가 넘쳐난다. ‘STOP’하라는 코로나19 견제구에도 끊임없이 도루를 시도하며 홈을 노린다. 욕망과 편리라는 홈을 말이다.

정수기가 어느새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필수 가전제품이 됐다. 플러그를 빼지 않는 한 흐르는 대기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것이 정수기다. 특히 냉온기능까지 켜두면 전력소비량은 더욱 커진다. 퇴근 후, 주말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사무실에서 냉온정수기가 홀로 사용하는 전력량이 핵발전소 1기가 생산하는 양의 절반이라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정수기는 냉장고, 싱크대와 콜라보로 장착돼 쓰임을 넓혀가고 있다.

우리 집에는 정수기가 없다. 그렇다고 물을 끓여 먹을 정도로 부지런하지도 않다. 고민 끝에 무전력 주전자를 사용한 지 8년째다. 주전자 볼에 수돗물을 받는다. 필터를 타고 내려온 정수된 물을 유리병에 따라 놓으면 끝이다. 요즘은 무전력 직수정수기도 시중에 나와 있다. 그조차도 불편하다면 냉온기능이라도 끄자. 하루 서너 번 차 마실 때 사용하는 냉온기능을 위해 내뿜어야 하는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다.

일 년 내내 사용하는 전기밥통은 에어컨보다 전력사용이 높다. 가전제품 중 최고봉이다. 전기밥통도 안 쓴 지 8년됐다. 압력밥솥에 먹을 만큼 하고, 남은 밥은 볶거나 스테인리스 삼발이에 데워 먹는다. 2,000원짜리 스텐 삼발이는 수증기를 쏘아 찬밥을 새 밥으로 돌리는 마술사다.

삼발이 덕에 전자레인지도 쓸 일이 없다. 데워 먹어야 할 음식은 프라이팬이나 삼발이로 충분하다. 급히 해동이 필요했던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불편함이 없다. 해동해야 할 냉동 음식은 전날 냉동실이나 실온에 내어놓는다.

이쯤 되면 필자가 살림을 잘하거나 엄청 부지런할 거란 착각이 들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일이 바쁘고 살림에는 게으른 축에 든다. 마늘 까기와 쪽파 다듬기는 놀고 있어도 하기 싫은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한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가전제품 3無가 가능한 것은 ‘불편함’이다. 영산성지 주변 6기를 비롯해 전국 25개 핵발전소에서 만들어내는 갈 곳 없는 핵폐기물과 전국 50여 기 화력발전소에서 뿜어대는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불과 200년도 안 되어 수백만 년 축적해온 화석연료를 마구 캐내어 자원을 거덜 내는 중이다. 발전소에서 뿜어낸 방사능과 이산화탄소로 지구수명, 아니 인류 스스로 수명을 단축하고 있다

“내가 많이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도적질이나 마찬가지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말처럼 내가 무절제하게 소비하는 만큼 내 아이들이 사용해야 할 미래를 빼앗는 격이다. 자녀들을 위해 어떤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부모들이 자녀들이 살아갈 지구에 이렇게 무심한 것은 아이러니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고 싶어서 절전을 하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김포교당 어느 교도의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물질을 비우라는 대종사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지구는 하나뿐이다.

자연감수성UP이태은 교도서울교당.원불교환경연대
자연감수성UP
이태은 교도
서울교당.원불교환경연대

 

7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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