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약이다_Breathing is med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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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약이다_Breathing is medication
  • 김현오 교무
  • 승인 2020.08.04 13:32
  • 호수 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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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대의 영성7
일러스트 우형옥 기자

우리가 어머니 태중에 머물 때는 탯줄을 통해 세포에 필요한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는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면 산소공급을 위해 폐를 통한 자가호흡을 해야 한다. 갓 태어난 어린 생명도 첫 숨부터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보면 우주 자연의 생명 설계는 참으로 완전하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고, 가르쳐 줄 수도 없고, 가르칠 필요도 없는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생명 작용은 그 자체로 신비다.

그런데 희한하다. 생이지지인 이 본능(본래 능함)적이고 기본적인 숨쉬기 활동을 많은 성인과 각종각파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해 왔다. 극락과 천국, 부처와 성인이라고 하는 고매한 인간상의 구현이나, 조건 없는 사랑과 자비행이라고 하는 인간의 실존적 이상 실현의 길이 어쩌면 인생의 시작이자 마지막 활동인 호흡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인의 의식영역에서는 대부분 무시되어 왔고, 자동화되어 왔고, 억압되어온 호흡! 이제라도 자신의 숨결을 망연히 지켜보는 연습을 해보자.

숨을 쉰다는 것은 무엇을 이루는 과정일까. 호흡은 60~70조의 세포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는 과정이며, 대사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는 잘 배출시켜 세포의 노화나 질병으로부터 최대한 보호하며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 활동이다. 이렇게 중요한 산소는 단 5분만 공급이 차단되어도 사망 내지는 최소한 뇌사상태에 빠진다. 산소 부족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정신기능을 순식간에 망가뜨린다.

우리 몸은 태어나면서부터 충분한 산소 용량을 공급할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잠든 어린아이의 배를 보면 호흡할 때마다 온몸이 들썩거린다. 전신이 오직 그 본질적인 생명 활동에 온전히 충실하고 있다는 증거다. 충분한 영양과 산소공급은 고요하고 깊은 수면 상태로 유도한다. 이것이 세포의 자연법칙이다.

그러나 성인(成人)의 호흡은 어떠한가? 현대인들은 일상이나 직업활동에서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음을 불평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이러한 내적 불만족과 긴장된 삶은 얕고 빠르고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을 하며 내면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업화 이후, 현대인들의 호흡은 이전보다 2배 이상 짧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호흡 패턴은 뇌파, 혈압, 심장박동 등 신체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정서와 인지적 측면에도 부정적 영향, 불균형과 부조화를 낳고, 심각한 경우에는 인격장애로까지 악화된다. 호흡 하나가 내 존재의 모든 차원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더 이상 자신의 숨결을 챙기지 아니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의식적인 호흡’의 기적과 마법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깨달은 자들이 남긴 숨쉬기 활동 교본과 수행법을 참조하여 내 숨결을 다시 골라야 한다. 우리의 뇌는 우리 몸에 필요한 산소의 25% 이상을 필요로 한다. 즉 산소가 부족한 혈액이 뇌로 올라갈 경우, 혈압이나 뇌압 등이 상승하여 두통과 불면증을 일으켜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산소 부족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곳이 바로 뇌인 것이다.

반대로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면 뇌를 최적화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높은 산에 올라 큰 숨을 들이쉰 경험을 떠올려 보자. 뇌 속 깊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통풍이라도 시켜준 것처럼 상쾌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가슴이 열리고 온몸의 신경이 새롭게 연결돼 새로운 기분을 맞이하게 된다. 내적 전환이 이뤄지는 순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챙긴 깊고 느린 호흡’의 기적을 발견하게 된다. 부처와 성인의 닦음도 호흡과 정신의 내밀한 역학관계에 대한 통찰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깊은 호흡이 긴장을 유발하는 교감신경을 비활성화시키고, 근육 이완과 뇌파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킨다는 현대과학적 지식을 3천 년 전의 성자, 백 년 전의 성자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번뇌라고 하는 치성한 의식 현상과 경직되어 가는 몸의 현상과의 상관성에 대한 관찰이 적중했고, 호흡이 에너지의 순환과 에너지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호흡이 주는 생명의 원리에 대한 발견이야말로 인류의 정신 진화에 위대한 발견이요, 관찰이요, 지혜다.

감성, 지성, 영성의 품격은 물론 몸의 움직임과 목소리의 조절, 악기를 연주하고 시를 읊고 대화하는 것도 깊게 보면 호흡이 빚어낸 생명의 예술이다. 조금만 깊이 관찰하면 호흡이 내용을 앞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호흡은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게 하고, 무심과 능심 사이의 걸림 없는 경지를 경험하게 한다. 위대한 지혜와 사랑의 권능도, 깊고 고요한 호흡의 길을 만들어가다 보면 머지않아 거두게 될 것이다.

호흡이 약이다.

과학시대의 영성김현오 교무미주동부교구 보스턴교당
과학시대의 영성
김현오 교무
미주동부교구 보스턴교당

 

8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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